김인택 명지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학생과 교수 사이의 ‘은밀한 거래’
우리나라 학부모의 대다수가 자녀 교육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자녀 교육의 최종 목표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고, 그 후 대학 교육에 따른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부모가 할 일이려니 여긴다. 게다가 요즘 흔히 말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학생들은 휴학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것도 예사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4년이 아닌 5년 이상 대학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런데 교육평가의 결과인 학점은 요샛말로 퍼주기가 성행하고 있다.
왜 후한 학점이 문제인가. 두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같은 통계에 따르면 A학점은 34.2%로 나타났다. 그러나 상위 1%, 10%, 30%에 속하는 학생들은 분명히 다르다. 그렇지만 작금의 학점 퍼주기는 이들을 동일시하게 되어, 학생들에게서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를 오히려 빼앗고 있다. 그야말로 반교육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또 신입사원을 뽑는 고용주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B학점을 받은 상위 40%와 80%에 속하는 학생 두 집단의 구별이 불가능하게 된다. 이와 같이 분별력을 잃은 학점 때문에 학생들은 요즘 고용주들이 요구하는 표준화된 영어 성적, 해외연수 경험, 자격증 등 부차적인 것에 전공 공부 이상으로 몰두하고 있다. 도서관이 전공 공부 대신 영어 공부하는 학생들로 꽉 차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후한 학점은 대학 교육을 부실하게 만든다.
대학은 이제 학점 퍼주기를 종식시킬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 예로 학점 세탁을 위한 재수강 기회나 학점 상한선 등에 제한을 두거나 교수들이 학점을 입력할 때 적정비율 안에서만 입력되도록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대학 평가에 학점의 분포를 지표로 사용하거나 성적표에 학점과 함께 석차가 나오게 하는 것도 학점 퍼주기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후한 학점은 대학교육 부실 초래
학점을 부여하는 일은 교육에 있어 지도 편달의 한 방편이다. 때로는 유일한 방법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성이 신장되고 있더라도 대학 교육은 이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는 데 흔들리지 않는 원칙으로 임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학점 부여에서 드러나야 하며, 이는 교수의 몫이다. 만일 B학점 이상을 받는 학생이 각각 30%, 100%인 두 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해 보자. 어떤 환경에서 우리 학생들이 더 경쟁력이 있는 인재가 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89.4%의 졸업생이 B학점 이상 받는 것은 분명히 교수들의 잘못이다. 교수는 엄중한 태도로 학점을 주고, 대학은 제도적 뒷받침을 해야 한다.
김인택 명지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