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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연극은 삶의 그림자? 위선의 옷을 벗자 관객 여러분!

입력 | 2012-03-27 03:00:00

■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




독일 연출가 르네 폴레슈의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는 파비안 힌리히스라는 배우의 원맨쇼였다. 2005년 독일 신인상 대전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힌리히스는 2010년 발표된 이 작품에서 펼친 비전통적 연기로 독일 연극 전문지 ‘오늘의 연극’이 선정한 올해의 연기자상을 수상했다. 페스티벌 봄 제공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때려 부순 공연이었다. 우선 형식부터 달랐다. 허구의 이야기를 배우의 연기로 재현한다는 전통적 연극의 형식을 무너뜨렸다. 한 명의 배우가 무대와 객석을 휘저으며 철학적 강설(講說)과 행위예술을 결합했다. 배우 파비안 힌리히스(36)는 공연이 시작되자 신발, 셔츠, 청바지를 벗어 관객에게 집어던지고 팬티 바람이 된 채 구르고 뒹굴며 ‘백인 남성 이성애자’라고 규정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펼쳤다.

그 내용 역시 연극에 대한 통념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관객은 그가 떠들어대는 낯선 사유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악의 없는 조롱과 역설적 유머가 넘치는 그의 화술에 취해 1시간 반의 공연시간 동안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이것도 연극인가’라는 의문부호를 안고 지켜보다 ‘아, 어쩌면 이것이 미래의 연극 아닐까’라는 감탄부호로 객석을 나서게 된다. 독일 포스트 드라마 1세대 연출가로 불리는 르네 폴레슈(50)의 이 문제작에 담긴 부정(否定)미학을 3개의 대사로 풀어보자.

○ “연극은 우리 진지한 삶의 그림자가 아닙니다.”

힌리히스의 첫 대사다. 그는 이를 외치면서 옷을 벗어던진 뒤 검은 천(그림자)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 현실의 반영물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로서 연극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폴레슈의 연극 미학에서 배우는 결코 전달자(messenger)가 아니다. 사실적 연기로 무언가를 재현해냄으로써 극작가나 연출가의 의도를 관객에게 간접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란 얘기다. 극작가 연출가와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달은 바를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일깨우는 소통꾼(communicator)이다. 힌리히스는 피아노 드럼 기타를 연주하면서 관객들에게 익숙한 팝송을 개사하거나 단순한 멜로디에 반복적 가사로 이를 풀어내 관객의 직관에 호소한다.

이때 그가 관객에게 일깨우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관객 스스로 되묻고 답해야 할 질문이다. 그렇기에 의문문이나 부정문 형태의 대사가 많다.

○ “이건 상호능동성의 연극이 아닙니다.”

상호능동성(interactivity) 연극이란 관객이 적극 참여하는 연극이란 의미다. 하지만 거기엔 이미 관객은 어떠한 존재이고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작동하고 있다. 그런 합의는 누가 정하는 것인가. 연극 제작자들이 관객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힌리히스는 “상호능동성 연극에 참여할 경우 경험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경험해야 한다”면서 치약 묻힌 전동칫솔을 들고 객석의 관객들에게 칫솔질을 강요한다.

상호능동성은 상호수동성(interpassivity)이란 개념과 은밀한 공모 관계에 있다. 상호수동성 연극이란 무엇인가. 힌리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연을 함께 본 뒤 파트너의 눈동자에서 보았던 감동을 나누는 것을 배우에게 위임하는 것, 즉 파트너와 데이트 권한을 배우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또 그것은 “좋아하는 영화가 TV에서 방영될 때 언젠가 나중에 보겠다면 비디오레코더에 영화 보는 즐거움을 위임하는 것”이다.

○ “우리는 드디어 해방됐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힌리히스는 본질이나 실체, 진실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영혼이나 내면은 우리를 현혹하는 가짜이고 진짜는 육체이고 피부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가 스스로와 맺은 외부 관계다. 따라서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한다. 니체와 들뢰즈의 사유와 일맥상통한다.

문제는 우리가 영혼이나 본질이란 가짜에 현혹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힌리히스는 우리들 삶이 이렇게 통째로 가짜에 놀아나게 된 기점이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1971년이라고 말한다. 브레턴우즈 체제는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가치를 금(실질가치)에 대한 교환가치로서 못 박았는데 이게 폐기되면서 실질가치와 연관된 맥락을 상실한 종이조각(달러)에 놀아나는 세상을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지나간 과거나 허구를 끊임없이 재현하는 게 예술이 되고, 김수현이나 김태희 같은 배우와 가상 데이트에 파트너를 위임하는 게 사랑이 되고, 뾰족한 해결책 없이 그저 논쟁을 위한 논쟁을 되풀이하는 게 정치가 된 ‘멋진 신세계’다.

:: i ::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의 개 막작으로 22, 23일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공연됐다. 11개국 22개 작품을 초청한 페스티벌 봄은 4월 18일까지 계속된다. 02-730-9616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