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현 경제부 차장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성장에 관심을 쏟고 있건만 유독 성장이란 말이 맥을 못 추는 곳이 있다. 바로 여의도 정치권이다. 4·11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양대 정당인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공약에서 성장이란 용어는 사라졌다. ‘기업규제 완화’나 ‘신(新)성장동력 육성’ 등 약방의 감초였던 성장공약은 자취를 감추고 복지공약, 재벌규제공약이 그 자리를 메웠다.
역대 정권이 경제성장을 국정의 핵심과제로 내세웠던 걸 고려하면 최근의 성장담론 실종은 한국 경제사의 중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50년 전인 1962년 1월 13일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뒤 성장은 우리 경제의 핵심 화두였다. 1970, 80년대 대부분의 기간 연평균 10% 안팎의 높은 성장세가 계속됐다. 노태우 정부(평균 8.7%), 김영삼 정부(7.4%) 때도 고도성장은 이어졌다.
청소년기가 끝나가며 성장의 속도가 떨어지듯 국가경제도 성장단계가 높아질수록 클 수 있는 범위에 제약이 생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989∼1997년 7.4%에서 1998∼2007년 4.7%로, 2008년 이후엔 3.8%로 하락했다.
상당수 경제 전문가는 우리 경제가 벽에 부딪친 이유로 장기 고도성장의 부작용을 꼽는다. 키는 훌쩍 컸지만 불균형 성장과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란 ‘성장통’이 생겼다는 것이다. 경제를 더 키우려면 적절한 복지로 고르게 영양을 보충하고, 기초체력을 보강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의 복지 경쟁이 경제체력을 강화하는 ‘생산적 복지’를 넘어 비만을 부추기는 수준까지 갔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새누리당은 5년간 최대 89조 원, 민주당은 164조7000억 원을 추가로 복지에 투입할 계획이다. 소아비만이 아이들 키 크는 데 지장을 주듯 복지비만은 경제의 성장판(板)을 일찍 닫는다.
일부 정치인이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내세우는 근로시간 감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사회적 일자리 확대가 새 성장동력이 될 것이란 주장은 현실적합성이 떨어진다. 복지선진국들의 선례를 볼 때 일자리의 질이나 성장기여도 면에서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스웨덴이 성장률을 높이려고 기업규제 완화, 법인세 인하 등 다양한 성장전략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중현 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