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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각중 ㈜경방 명예회장 영전에

입력 | 2012-03-20 03:00:00

화합-소통의 리더십 보여준 회장님 그립습니다




손병두 KBS 이사장 前전경련 부회장

김각중 회장님.

지난해 말 회장님을 찾아뵀을 때 부부 동반 식사자리를 마련하시겠다고 하셔서 연락을 기다리던 차에,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듣고 큰 충격과 함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엄습해 옵니다.

존경하는 김각중 회장님.

회장님께서 늘 걱정하셨던 바와 같이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모두 우리 사회에 의지할 참어른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이러한 때 경제계의 기둥이자 큰어른으로서 저희들을 이끌어 주셔야 할 회장님께서 홀연히 떠나시니 큰 별이 진 것 같아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제 누구를 믿고 의지하며, 우리의 나아갈 길을 여쭤봐야 합니까.

외환위기 때 재계 단합 이끌어


회장님은 경제계가 가장 어렵던 외환위기 때 전경련의 회장 직을 맡아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으로 재계의 단합을 이끄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 나타나시기보다 뒤로 겸손하게 숨으셨고, 말보다 실천으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 않게 꼭 필요한 일들을 미리 보시고 챙기셨습니다.

존경하는 김각중 회장님.

회장님 영전에 서니 회장님을 모셨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갑니다. 처음 전경련 총회에서 회장으로 추대되셨을 때 완강하게 고사하셔서 김입삼 고문과 함께 댁으로 찾아뵙고 농성을 한 끝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회장님의 한없이 낮추시는 겸손과 고결한 인품에 매료됐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하와이에서 열렸던 한미 재계회의에서 회의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만찬 석상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 미국 재계 지도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이 덕분에 회의는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때는 도쿄에서 한일 재계회의를 개최하시고 유창한 일본어로 유머와 위트를 구사해 일본 재계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한국과 대만 사이에 국교가 단절된 지 8년 뒤 회장님께서는 직접 대만의 재계와 정계 인사들을 만나 특유의 유머와 위트, 오페라 아리아와 소홍주로 냉랭했던 이들의 마음을 녹여냈습니다. 한-대만 민간경제협력위원회가 부활하고 항공기 운항이 재개되는 데는 회장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처럼 회장님은 고매한 인품과 진정성으로 상대방을 마음속으로 설득하는 민간경제 외교의 달인이셨습니다.

또 회장님은 화합과 단합을 이끌어내시는 리더이셨습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입은 상처 때문에 흩어진 재계를 단합시키려 각별한 노력을 하셨습니다. 골프장을 갖고 있는 전경련 회장들의 골프장에서 돌아가면서 골프대회를 개최하여 재계의 단합과 화합을 이끌어 내신 것도 회장님만이 가진 겸손과 부드러운 리더십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회장님은 참으로 속이 깊고 마음이 따뜻하셨습니다.

전경련을 떠난 원로 회장들의 모임인 ‘나그네 모임’의 좌장으로 일신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이제 누가 그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해 주겠습니까.

유머로 상대 배려하던 모습 선해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에게도 마치 친형님처럼 신뢰와 사랑으로 지도해 주시고 가장 보람되게 전경련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회장님은 대학교수로 계시다가 경방의 경영을 이어받으실 때 많은 걱정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경방은 섬유에서 기계부품, 유통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확장해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또 정직하고 믿음직한 기업으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경방은 잘 훈육하신 두 아드님이 회장님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켜 나가리라고 믿습니다.

회장님께서 걱정하시던 나라와 경제계는 회장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정직과 상식의 철학을 바탕으로 서로 화합하는 세상이 되도록 남아 있는 저희들이 노력하겠습니다.

저희는 무엇보다도 김각중 회장님 하면 바쁜 회사 일을 하시면서도 삶의 여유를 즐기시는 낭만적인 분으로 기억합니다. 항상 음악을 가까이하셨고 사람을 대하실 때에도 위트와 유머로 상대방이 보다 편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앞으로 더는 회장님의 따뜻하고 인자하신 미소를 만날 수 없다는 점이 저희들을 아쉽고 슬프게 만듭니다.

존경하는 김각중 회장님.

회장님의 끝없이 깊으신 성품과 한없이 크신 사랑을 저희 모두는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남아 있는 저희들은 회장님께서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를 가슴 깊이 품고 회장님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부디 무거운 세속의 짐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잠드소서.

삼가 김각중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손병두 KBS 이사장 前전경련 부회장            

▼“존경하는 재계 선배 애도하러 왔다”… 정몽구 회장 등 조문객 발길 줄이어▼

■ 빈소 이모저모


17일 세상을 떠난 김각중 경방 명예회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19일 재계와 정·관계 등 각계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상주인 김준 경방 대표이사 사장, 김담 경방 대표이사 부사장 등 유족과 장례를 주관하는 호상(護喪)을 맡은 손병두 KBS 이사장은 차분한 모습으로 문상객을 맞았다.

고인과 나이(87세)가 같아 생전에 친분이 두터웠던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전국경제인연합회 활동을 함께한 기업인들은 이날 빈소를 찾아 안타까움을 표했다. 정 회장은 “존경하는 (재계) 선배가 돌아가셔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김상하 삼양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겸 두산중공업 회장,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허명수 GS건설 사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등 재계 주요 인사들도 조문했다. 현 회장은 “(김 명예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으셨을 때 이런저런 큰일을 많이 하신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겸 채널A 회장, 전여옥 국민생각 국회의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회장도 빈소에 들러 고인의 뜻을 기렸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수혜 여성경제인협회장, 노희찬 한국섬유산업연합회장 등 경제단체 관계자와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서진원 신한은행장 등 금융계 인사들도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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