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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인 스타] 이규혁 “내 목에 올림픽 메달, 그 꿈은 여전히 진행형”

입력 | 2012-03-20 07:00:00

이규혁은 2년 전 밴쿠버에서 또다시 메달을 따지 못해 올림픽에서만 5번째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세계 정상의 스케이터이자 한국 빙상의 맏형이다.동아일보DB


서른 넷…그가 다시 뛰는 이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큰 형님. 20년 가까이 세계 정상에서 빙상계를 호령했던 베테랑. 하지만 하필 5번의 올림픽에서만 메달을 따지 못해 ‘비운의 스타’로 불려야 했다. 이규혁(34·서울시청)은 “나는 운이 없는 선수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다”며 담담하게 웃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20년 동안 500m를 셀 수도 없이 많이 탔어요. 올림픽은 그 중에 딱 다섯 번이었고요. 200번 정도 운이 좋다가 다섯 번 불운했는데, 그것 때문에 ‘비운’이라는 건 말이 안 되죠. 전 분명히 운 좋은 선수예요.” 2011∼2012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파이널이 열린 독일 베를린에서 이규혁을 만났다. 5번의 올림픽에 얽힌 사연, 그리고 늘 자랑스러웠지만 때로는 지겹기도 했던 스케이트 인생에 대해 들려주는 내내 그는 당당했고 구김살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솔직했다.

20년 동안 500m를 셀 수도 없이 달렸다
그 중 동계올림픽 무대 질주는 다섯 번

수 없이 세계 정상에 우뚝 올라섰지만
다섯 번의 실패로 난 ‘비운’의 스타가 됐다
하지만, 다섯 번의 실패가 있었기에
난 은퇴를 할 수 없었다

난 아직 현역…올림픽메달, 해피엔딩을 위하여!


-두 달 전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종합 2위에 올랐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단한 일이다.

“그런가.(웃음) 일종의 전략이었다. 시즌 전까지는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즌이 시작되니 준비가 덜 된 부분이 느껴졌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대회 하나에 모든 걸 맞춰보자는 생각을 했다.”

-‘선택과 집중’인가.

“나이가 들어서 가장 힘든 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거다. 워낙 오래 이 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리 큰 국제대회도 이제는 일상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요즘은 내가 부진하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컨디션을 다른 대회에 맞추느냐’고 묻는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한참 어린 후배들에게 여전히 앞서는 비결이 분명히 있을 텐데.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사실 몸 관리는 후배들이 더 열심히 한다.(웃음) 다만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심리적 면인 것 같다. 이번 월드컵 파이널에서 부진했는데, 예전에 그랬다면 실망하고 조급해졌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한다. 내가 항상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니까 마음이 편하다. 그런 작은 변화가 분명 도움이 된다.”

-중학교 1학년 때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가끔은 스케이팅이 지겹지 않나.

“솔직히 매 순간 지겹다. 스케이트가 잘 안 타질 때 특히 지겹다. 성취감을 맛보려고 대회에 나가는데 그걸 못 느끼는 거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올림픽 외에는 다 메달을 따봤으니까 이제는 우승을 해도 예전보다는 좀 덜 기쁘다. 20년 운동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같은 생활을 반복하고 유지하는 걸 가장 힘들어한다.”

-올림픽. 그 얘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2년 전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도전하는 게 슬펐다”는 말로 대한민국을 울렸다.

“말 그대로였다. 최고의 컨디션과 기대감을 안고 밴쿠버에 갔는데, 경기 당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알았다. 그동안 수없이 경험했던, 우승하는 날 아침의 그 느낌이 아니었다. 워밍업하고 시합을 준비하면서도 그랬다. 그때의 나를 지금 본다면 냉정하게 ‘너 메달 못 따’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는 경기 전이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역시 결과는 예감대로 됐지만.”

-왜 몸이 무거웠나.

“잠을 잘 못 잤다. 애절한 마음이 커질수록, 대회 직전 몸이 안 좋으면 더 많이 허무하고 흔들리는 것 같다. 밴쿠버에서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고, 주위의 응원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와 닿아서 꼭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더 불필요한 긴장을 한 것 같다.”

-첫 올림픽(1994년 릴레함메르)이 기억나나.

“물론이다. 그때는 올림픽이 페스티벌 같았다. 어차피 우승 후보가 아니었고, 중학생이었으니까. 내 종목이 세상에서 제일 대단한 줄 알았던 시절이니, 올림픽이 얼마나 크게 느껴졌겠나. ‘언젠가는 저 시상대에 올라가겠지’ 하는 막연한 자신감도 품었다.”

-그럼 언제부터 올림픽이 전쟁터가 됐나.

“바로 다음부터다. 시합은 30초하면 끝인데, 한 달 전부터 모든 순간이 그 30초에 맞춰진다. 계속 스타트라인에 서 있는 장면을 생각한다. 잘 뛰쳐나가는 그림보다 뭔가 실수하는 그림이 늘 떠오른다. 그럼 다시 생각을 고치고 또 고친다. 그 상상을 올림픽 끝날 때까지 하는 거다. 1998년에는 일주일 내내 밥 먹을 때 손이 떨렸고, 2002년에는 스타트라인에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실 메달 따는 선수들과 못 따는 선수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억지로 올림픽에 몸을 끼워 맞추는 선수보다 저절로 준비되는 선수가 이기는 것 같다. 역대 메달리스트 명단을 보면 더 그렇다.”

-언제가 가장 아쉬웠나.

“어느 하나 안 아쉬운 대회가 없다. 1998년은 1000m 세계기록 보유자였고 나이도 어려서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는데, 주변이 좀 어수선해서 운동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2002년은 1500m 세계기록을 갖고 있어서 메달을 노릴 종목이 하나 늘었지만, 첫 경기인 500m에서 꼬이면서 끝까지 갔다. 그래서 2006년에는 1000m 한 종목만 팠다가 0.05초차로 4위가 됐다. 2010년에는 기술도 정신력도 다 좋아졌다고 여겨서 은퇴 결심까지 뒤집고 나갔는데 결국 안 됐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이 2년 남았다.

“밴쿠버에서 너무 많이 울어서 지금은 다음을 얘기하기가 민망하다.(웃음) 사실 대표선발전 거쳐서 올림픽에 나가는 거야 어렵지 않다. 하지만 목적 없이 그냥 간다면, 내가 묵묵히 희생하고 있는 후배들 중 한 명이 올라갈 자리를 막는 거다. 우승권, 메달권에 근접한 기량으로 잘 버티면 가고 못 버티면 못 간다. 아직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운동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일과 후회되는 일은 뭔가.

“지금까지 선수를 계속한 게 가장 잘한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늘 노력보다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했고, 어느 정도 하다 빨리 그만 두려고 했다. 하지만 계속 실패를 겪고 여기까지 오면서 성격도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결과적으로 99%의 재능 자체가 1%의 노력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후회되는 건, 밴쿠버에서 경기 전날 잠을 못 잔 것. 그동안의 실수와 아쉬움을 다 보완해서 완벽히 준비했었다. 조금만 더 잘 잤으면, 그리고 긴장만 조금 덜했으면 메달 하나 정도는 손에 넣었을 텐데. 그 하룻밤이 너무 아쉽다.”

-은퇴 시기도 여전히 고민이겠다.

“지금은 은퇴 생각을 늘 마음속에 갖고 있다. 후배들은 경기력이 떨어지면 다시 끌어올리면 되지만, 나는 다시 힘을 낼 정신력도 시간도 없다. 자꾸 지면 그때 은퇴해야지. 밴쿠버올림픽 후 두 시즌을 치르는 동안 마음의 준비도 끝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을 생각인가.

“지도자로 크게 되겠다는 욕심은 없다. 다만 2018평창동계올림픽에서 대표팀 코치를 맡는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코치로서 우리나라에서 내 마지막 올림픽을 치르고 싶다. 좋은 엔딩이 될 것 같지 않나.”

-영화로 치면 최고의 해피엔딩이다.

“밴쿠버대회 후 내 얘기로 책이나 영화를 만들자고 섭외가 많이 왔다. 하지만 은퇴를 안 해서 못 만든다고 하더라.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은퇴할 수는 없지 않나.(웃음) 사실 내 책, 내 영화의 엔딩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들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되길 바랐다. 20년 전부터 꿈꿨던 순간이니까. 아직 은퇴를 안 했으니 진행형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결국, 올림픽이다.

“사실 올림픽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후배들 메달을 하나 뺏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집에 수많은 메달과 트로피가 놓여 있는 장식장이 하나 있다. 거기에 올림픽 메달 하나만 딱 있으면 얼마나 빛이 나겠나. 아. 아깝다.(웃음)”

이규혁?

▲생년월일=1978년 3월 16일
▲키·몸무게=177cm·78kg
▲소속팀=서울시청
▲출신교=리라초∼신사중∼경기고∼고려대
▲주요 경력=1993년(만 15세) 첫 국가대표 선발, 1994릴레함메르올림픽 역대 최연소 출전, 1997년 12월 한국 선수 첫 빙상 세계기록(1000m) 경신, 1994·1998·2002·2006·2010동계올림픽 5회 연속 출전, 2003아오모리(1000m·1500m)·2007장춘(1500m) 아시안게임 금메달, 세계스프린트선수권 4회 종합 우승(역대 최다 우승 타이기록), 2011세계종목별선수권 500m 금메달 외 국제대회 다수 입상


베를린(독일)|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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