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택 논설위원
박정희 기념관은 서울 북서부 상암지구의 요지에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 1km 떨어진 곳에 있고 기념관 바로 오른쪽에 연간 1000만 명이 방문하는 82만여 ㎡(25만 평) 규모의 월드컵공원도 있다. 바로 앞에는 133층 규모의 서울DMC랜드마크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처음 기념관 위치가 정해졌을 때 서울의 외진 곳인데다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라며 불만이 많았던 기념사업회도 지금은 만족하고 있다. 기념관 건립이 진행된 13년 동안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념관에는 1961년 5·16부터 1979년 10·26까지 ‘박정희 시대 18년 6개월의 역사’가 3개 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박정희 개인보다 1960, 70년대 대한민국의 성과와 업적을 중심으로 전시가 이뤄져 박정희 시대의 국가 성공신화를 볼 수 있었다. 이 시기에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1961년)에서 1676달러(1979년)로 약 20배, 수출은 4000만 달러(1961년)에서 150억 달러(1979년)로 무려 370배가 됐다. 그 기간은 오늘의 2040세대 좌파들한테서 ‘보수골통’이라고 공격받는 60대 이상 세대가 국내외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시대였다. 기념관 방문객의 80%가 60대 이상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떤 시대나 명암(明暗)이 있기 마련이다. 박정희 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는데, 그런 피해자가 적지 않다. 박정희 시대가 ‘산업화 성공 시대’이자 ‘독재시대’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는 선조 대대의 가난을 끊어낸 시대요, 이를 통해 민주화를 가능케 한 시대다. 박정희를 폄훼하면서 북한을 굶주림과 아사(餓死)의 지옥으로 만든 김일성 김정일을 우러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보고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박정희 기념관을 보았다면 같은 마포구에 있어서 시내버스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동교동 김대중 대통령 기념관도 함께 볼만하다. 2003년 문을 연 김대중 기념관은 박정희 기념관과 비교하면 시대보다 개인의 역사에 무게가 실려 있다. 김대중 기념관은 요즘 주말에만 20∼30명이 찾아올 뿐 한산한 편이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