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청 제공
한자가 상형문자이다 보니 복잡한 지형학을 우리는 참 간단하게도 풀어내는구나 싶다. 마을의 모양이 댓잎이라 풍수상으로는 선주형이다. 배 모양이라는 건데 당연히 배에 구멍이 나면 안 된다. 그래서 우물을 함부로 파면 동네가 망한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을 흐르는 옥계천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우물과 그 우물자리를 표시하기 위한 종바위가 있다. 이 우물은 옥계천 주변 자연암반에서 솟아 나오던 다섯 개의 샘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인공적인 우물을 절대 파지 못하게 했다. 60여 호의 마을에 우물 다섯 개면 충분하다. 더는 욕심을 경계하지 못하면 수질도 나빠지고 물의 양도 줄어든다. 마을의 면적과 거기에서 살 수 있는 적당한 인구, 그리고 그 인구가 마실 수 있는 물의 양까지 정확하게 계산한 도시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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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평마을의 집들은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경주 안강의 양동마을과 다르다. 하회나 양동이 조선 중기의 사대부가를 보여준다면, 개평마을은 조선 후기 18, 19세기의 역동적인 사회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오담고택은 그 중심에 있다. 사랑채는 1838년, 안채는 1840년에 지었다. 이때 이미 조선의 지식사회는 베이징을 통해 들어온 새로운 문물에 충격을 받고 난 후였고, 중상주의가 팽창하고 있었던 격동의 시기였다. 사대부가들도 이 변화에 맞추어 이전의 격을 깨기 시작했다. 오담고택이 잘 보여주듯 툇간(退間)이 자유롭게 쓰이고 부섭지붕이 박공면에 달렸다.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