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군청 제공
조선 집은 특히 이런 공감각을 요구하는 빛과 색, 형태, 소리, 질감, 냄새 등을 통해 집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풍수적 입지를 통해 광범위한 영역에서 집으로 좁혀 들어오는 우리 조선 집의 특징상 시각적인 것 하나로는 집을 충분히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남 해남군에 있는 녹우당(綠雨堂)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집이다. 이 집은 여러 세대에 걸쳐 완성됐고 사당도 세 곳이나 된다. 마당도 고방마당, 안마당, 사랑마당, 행랑마당, 작업마당, 바깥마당이 있고, 그에 따라 채도 여러 채로 나뉘고 진입처도 다양하다. 보통 고산 윤선도 고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집이 지어진 때는 윤선도 시대보다 훨씬 전이고, 이 집이 오늘날과 같이 살림집으로 정착한 것은 고산의 증손자인 윤두서에 이르러서다.
덕음산을 주산으로 서남향하고 있는 녹우당은 집 뒤쪽에 고산이 직접 심었다는 오백 그루의 비자나무 숲을 배경으로 마을의 가장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녹우당이라는 당호도 우거진 비자림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쏴∼하며 비가 내리는 듯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소리를 색으로 표현한 멋진 이름이다.
풍수적으로 가장 완벽한 터라는 이 집은 바라다보이는 안산(案山)이 너무 먼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앞쪽으로 너무 휑해서 고산은 마을 앞에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5개의 가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몰무덤’이라고 불리는 이 연못은 메말랐지만 아직도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남아 있다. 묘한 매력으로 넘치는 집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