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低환율 정책으로 선회 시사
《 8일 서울 외환시장의 최대 화제는 단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전날 페이스북 대담(對談) 발언이었다. 박 장관은 7일 이 대담에서 “환율이 높다고 수출에 유리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 반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커졌다”고 말했다. “물가에 따른 서민 고통이 훨씬 심하고 경상수지는 흑자를 유지하는 현 상황에서 정부는 고환율 정책(원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쓰지 않고 있다”는 박 장관의 발언은 사실상 저환율 기조를 펴겠다는 시그널로 시장에서 인식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 기대감이 겹친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6.5원 내린 1118.3원으로 장을 마쳤다. 》
박 장관의 이날 발언은 고환율 정책의 공식 폐기를 뜻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모아졌다. 고환율 정책은 이명박 정부 경제정책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각각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과 차관을 지낸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과 최중경 동국대 석좌교수가 고환율 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7% 성장률 달성을 목표로 했던 2008년 당시 강 전 장관은 “중소기업의 수출 가격 경쟁력을 위해 환율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겠다”며 수출 기업을 위한 고환율 기조를 천명했다.
고환율 중심의 경제 운용으로 그해 2월 달러당 950원대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은 6개월 만에 1100원대로 급등했다. 수출 기업과 경상수지 흑자에는 큰 도움이 됐지만 문제는 시기였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고환율은 짐이 됐다. 국내 단기외채 급증 및 일부 외신의 위기설과 맞물리면서 환율은 하루에 40원 넘게 오르며 1500원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당시 고환율 정책이 수출 확대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더라도 이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정책 선택의 시기가 맞지 않아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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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8일 기준금리를 9개월째 3.25%로 동결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는 환율 변동성이 0.7%가 넘어갔으나 현재는 일일 변동성이 0.3%밖에 안 된다”며 “과거에 비해 매우 안정적이 됐다”고 언급한 만큼,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을 끌어내리는 무리수를 두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박 장관의 발언은 정부가 환율을 둘러싼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라며 “물가 상승 압력이 계속된다면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을 일부 조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