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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차 한잔]‘시장은 정의로운가’ 이정전 교수

입력 | 2012-03-03 03:00:00

“수치에 빠진 경제학자들, 시장의 눈물에 시선 돌려야”




자본주의체제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의 균형을 이뤄준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기업이 운영하는 빵집과 슈퍼가 영세 상인들의 매상을 잠식하고 고학력 인재들이 취직을 못하는 현실에도 보이지 않는 손은 있는가. 우리의 자본주의 시장은 과연 정의로운가.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69·경제학·사진)가 이 질문에 답하는 책 ‘시장은 정의로운가’(김영사)를 출간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시장의 정의 문제를 연구했고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대표, 환경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1994년 시장의 정의를 다룬 책 ‘분배의 정의’(집문당)를 냈지만 당시엔 관심을 끌지 못했다. 최근 2년 사이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인기를 끌면서 정의가 한국사회의 화두로 떠오르자 이 교수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일상과 연관시켜 시장과 경제의 정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경제이슈에 대해 보수와 진보 진영이 자기 쪽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선거철도 됐으니 각 진영의 논리를 소개하고 독자들이 시장의 정의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생각은 한마디로 현재 시장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 그는 “수요와 공급의 양 날개가 균형이 잡혀야 시장이 정의롭게 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서문에서 “시장의 눈물에 눈감은 경제학자들이여, 부디 이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썼다. 또 책의 곳곳에서 “경제학자들은 공정성 문제는 제쳐두고 시장의 원리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들에게 쓴소리를 했다. 사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제학계에서 시장의 정의에 대한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말이다.

“요새 경제학이 너무 이론화 수학화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경제학 안에서 철학에 가까운 정의를 논하긴 어렵지요. 그렇다면 철학자들이 쌓아놓은 근거를 바탕으로 시장의 공정성을 논해 보자는 게 제 생각입니다.”

책은 경제학을 뼈대로 하면서도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 이마누엘 칸트와 존 롤스 등의 철학을 종횡무진한다. 그리고 플라톤이 꿈꾸던 ‘정의로운 사회’로 마무리한다. 경제 영역에서는 성과주의에 입각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많이 생산하며, 정치 영역은 평등의 원칙에 입각해 고르게 분배하고, 사회화 영역에서는 필요에 따라 알맞게 나눠 쓴다면 시장경제가 조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최근 ‘경제 민주화’에 대한 얘기가 많은데 사실 과거에도 이에 대한 논의와 대책이 있었지만 제대로 실천이 안 되었을 뿐”이라며 “시장의 정의를 위해 새롭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기보다는 기존에 나온 대책이라도 확실하게 실행하자”고 정부와 학계를 꼬집었다.

소득이 일정 수준에 올라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고 난 뒤에는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정체된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에서 보듯 이제는 경쟁보다 협동이, 생산성보다 사회적 통합이 정의와 행복을 이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행복경제학에 대한 글을 써온 그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