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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정(孤山亭)은 퇴계의 산책길인 가송협에 지어진 성재 금난수(惺齋 琴蘭秀·1530∼1604)의 정자다. 금난수는 퇴계의 제자지만 그의 저술에 대해서 자세하게 전해지는 것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그의 학문이 얕았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금물이다. 근대학문은 그 사람의 저술로 학문적 입지를 판단하지만, 조선시대 유교적 전통에서는 입덕(立德)을 가장 높이 치고, 입공(立功)을 다음으로 쳤으며 입언(立言)을 마지막에 두었다. 왜냐하면 어떤 이의 학문은 반드시 그 사람의 삶의 태도로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삶과 유리된 지식은 아무리 화려해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옛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행히 그 삶을 엿볼 수 있는 건축이 여럿 남아 있다. 금난수의 고산정도 그 하나이다. 낙동강 상류의 가송협을 이루는 취벽과 고산은 마치 낙동강이 용으로 현신해 꿈틀대며 날아오르다 끊어 놓은 것처럼 뚝 잘려 있다. 그 결과 서쪽에 있는 절벽이 고산이 되었고, 동쪽에 있는 절벽이 취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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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도 여성스럽기보다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안배가 집 곳곳에서 보인다. 더구나 계자난간을 두르고 가운데서 정자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양 끝에서 오르게 되어 있는 점도 특이하다. 정자치고는 넓은 정면 세 칸에 측면 두 칸이고, 양쪽에 방을 두었는데 왼쪽 방은 통간이고, 오른쪽 방은 뒤로 물러난 한 칸이다. 따라서 마루가 거꾸로 된 ‘ㄴ’자로 배치되어 있다.
퇴계는 자신의 산책길을 도산구곡(陶山九曲)이라 부르고 그곳을 산책하는 것을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고 표현했다. 고산정은 퇴계의 그림 속에 있는 집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