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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인에 대한 배려심도 많았던 분”… 췌장암 별세 강영우 박사

입력 | 2012-02-27 03:00:00

국내 분향소에도 추모 발길




시각장애를 딛고 한국인 최초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까지 오른 강영우 박사의 영정 앞에서 연세대 2년 후배인 김영 인하대 교육대학원장은 고인이 대학시절 즐기던 농담 한 토막을 떠올렸다.

“어제 텔레비전 봤냐? 그 여배우 정말 예쁘지 않디?” 눈이 보이지 않는 강 박사의 농담에 김 원장은 말문이 막히곤 했다. “눈은 멀쩡해도 편견에 가려 있던 저에게 ‘우린 다 같은 인간일 뿐’이란 걸 일깨워준 사람이죠.”

25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강 박사를 추모하는 발길로 붐볐다. 미국 워싱턴 인근 자택에서 23일(현지 시간) 췌장암으로 별세한 고인(향년 68세)의 분향소가 이곳에 차려졌다. 추모객들은 분향소를 지키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학 후배 정진호 경쟁력평가원장은 20년 전쯤 강 박사와 스키를 타러 간 일화를 꺼냈다. ‘발에 닿는 감각으로 길이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데 스키도 마찬가지’라는 게 강 박사의 지론이었다. 강 박사는 손바닥에 스키장 코스를 그려 달라고 한 뒤 코스를 익혀 혼자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영우 형은 숙소에 있는 탁자와 의자 위치를 외우고 비장애인처럼 다녔어요. 다른 사람이 불을 켠 채 방을 나가면 대신 불을 꺼줄 만큼 비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이 많았죠.”

강 박사의 맏아들 진석 씨가 하버드대 입학 당시 쓴 에세이에는 어둠 속에서 책을 읽어주던 아버지에 대한 대목이 있다. 보통 아버지는 불을 켜고 책을 읽어 주니 눈이 부셔 잠을 못 자지만 내 아버지는 불을 끈 채 마음속에서 이야기를 꺼내 읽어줬다는 얘기다. 진석 씨는 아버지 눈을 고치겠다며 의대에 갔고 유명 안과의사가 됐다.

강 박사의 영결식은 27일 오전 10시 추도 예배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