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DB
관가정은 우재 손중돈의 살림집이자 지금은 서백당으로 옮겼지만 월성 손씨의 종가였다. 이름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집’이라는 뜻이다. 집에서 보면 과연 그렇다. 물봉에서 호명산을 바라보게끔 지어진 집은 그 오른쪽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안강 들판이 그대로 보인다. 복잡한 여느 동네 반가의 형이상학적 이름과는 사뭇 다르게 간단하다.
집의 평면도 꼴로 보면 딱 맞게 좌우 대칭이다. 안채에 세 칸의 넓은 대청이 있고, 안방과 사랑채 사이에 또 마루가 있으며, 사랑채에서 안강 들판 쪽으로 넓은 마루가 또 있다. 이 마루는 현재 한 칸은 안방용 마루고, 한 칸은 광으로 사용된다. 마루가 이렇게 많은 것은 대종가로서 잦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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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관가정은 이 대칭성을 파괴하지 않고 전혀 대칭성에 얽매이지 않는 호방함을 이루었다. 반듯한 균제미 속에서 자유를 구가한 것이다. 바로 잦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구성한 마루에 의해서다. 마루는 방과 달리 벽이 없다. 마루의 이 개방성이 외부 공간과 조우하면서 관가정의 균제미는 그 대칭성을 파괴하지 않고도 공간 속에서 자유를 구가한다.
그 절정이 안강들이 내려다보이는 사랑채의 대청이다. 원래 이 집에는 담장과 대문이 없었다. 가랍집(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초가집)들이 접근로에 있어서 드나드는 사람들의 통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집의 영역은 그대로 물봉에서 호명산으로 이어지고, 안강들로 확장된다. 2차원의 평면 속에서는 대칭 속에 갇혀 있던 집이 3차원의 공간에서는 마음가는 대로 풀려나오는 집. 그 한계 속에서 자유롭기에 자유의 한계를 훌훌 털어버린 집이 관가정이다. 조선집의 참매력이 아닐 수 없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