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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외교부 개혁 근처도 못간 金 장관

입력 | 2012-02-03 20:00:00


방형남 논설위원

외교통상부 공관장들은 올해부터 해마다 업무평가 결과에 따라 순위가 매겨진 성적표를 받는다. 업무성과는 정무 경제통상을 비롯해 8개 분야 31개 항목, 168개 지표로 구분된 기준에 따라 세밀하게 평가된다. 공관 규모와 업무 특성에 따른 불평등이나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그룹으로 나누고 가중치를 부여하는 보완장치도 마련했다.

대사와 총영사 156명은 지난해 하반기 시범평가 결과를 받아들고 살벌한 경쟁시대에 진입했음을 절감했다. 대부분 어려운 외무고시 관문을 통과해 자부심이 대단한 공관장들은 평가결과에 따라 1위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매기는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

고질병 ‘공관장 부패 불감증’

외교부는 그동안 공관장 평가가 외무고시 기수(期數), 조직경로, 평판 등에 주로 의존해온 데다 인사와 직접 연계되지 않았다는 반성에서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개발했다. 실무 직원의 인사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국장급으로 구성된 제2인사위원회를 설치해 실무 직원 인사에 대한 장관 등 고위 간부들의 개입을 차단했다.

외교부의 새로운 평가와 인사 시스템은 2010년 10월 취임한 김성환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쇄신작업의 결과물이다. 김 장관은 유명환 전 장관이 딸 특채 파동으로 경질된 뒤 증폭된 외교부 인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쇄신에 돌입했다. 그러나 최근 드러나고 있는 외교부 추문들은 김 장관의 쇄신작업이 껍데기뿐이었다고 웅변하고 있다.

외교부가 개혁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면 부내 혼란이 안정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텐데 결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김 장관은 최근 외교부가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과 관련된 주가조작 의혹에 휩싸이자 “형언할 수 없는 참담함과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며 괴로워했다. 며칠 전에는 중국 우한 총영사가 불투명한 회계처리를 하다 적발돼 소환된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일까. 공정한 인사와 객관적인 업무평가로는 해소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의 가장 큰 약점은 공관장들이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관장들의 잘못된 처신은 지난 연말 발표된 국가권익위원회의 청렴조사에서 확인된다. 외교부는 내부 청렴도 평가에서 중앙 부처 가운데 꼴찌를 했다. 내부 청렴도는 해당 부처의 과장 이하 직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여서 결과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다.

부당한 예산 집행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외교부 응답자의 17%가 “그렇다”고 시인했다. 전체 부처 평균은 7.4%였다. 외교부 예산은 대부분 외교활동비와 업무추진비여서 공관장이 자의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소지가 크다. 일부 공관장이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 시대 조류를 인식하지 못하고 예산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악습을 버리지 못해 끊임없이 잡음이 생기는 것이다. 젊은 외교관들이 그런 공관장을 본받아야 할 리더로 생각할 리 없다.

장관 혼자선 바꿀 수 없는 외교조직

공관장의 책임감 부족도 심각하다. 김은석 전 에너지자원대사는 다이아몬드 개발과 관련해 허위 보도자료를 낸 것이 밝혀져 직위해제 됐는데도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 주재 대사는 지난해 상아 밀반입이 적발됐으나 끝까지 발뺌을 해 부인은 기소되고 본인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회계처리 잘못으로 소환된 총영사는 영사에게 권한을 위임한 잘못밖에 없다며 억울하다는 탄원서를 장관에게 보냈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으로 외교부 전체가 지탄을 받는데도 한사코 책임을 회피하는 공관장이 있는 한 외교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김 장관이 외교부 쇄신에 성공하려면 먼저 공관장의 공감과 동참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공관장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고는 외견상의 제도 변경만으로 외교부를 변화시킬 수 없어 보인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