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준 산업부 차장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 보면 대기업들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 분명히 있다. 대기업 옥죄기 기류는 직접적으로는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기인하지만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동네상권 침해, 일감 몰아주기, 담합 등 일부 대기업의 부정적인 행태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때맞춰 쏟아지는 대기업 관련 서적 가운데 ‘가난한 집 맏아들’이라는 제목의 책은 독특한 비유로 문제에 접근한다. 부모(정부)가 소 팔고 논밭 팔아 마련한 돈으로 대학에 진학하고(특혜) 결국 큰 성공을 거뒀지만 자신 때문에 희생한 동생들(중소기업)을 도외시하는 맏아들(대기업) 얘기다. 저자는 ‘명시적인 계약은 없었더라도 성공한 맏아들은 희생한 동생들에게 보상해야 할 도의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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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대학에 간다고 다 성공할 수 없는 것처럼 혜택을 본 기업들이 모두 잘나가는 대기업이 된 것은 아니다. 창업자들은 자금을 마련하느라 속을 태웠고, 결단의 순간에는 밤을 하얗게 새웠다. 그렇게 일궈낸 기업은 어느덧 자신의 분신(分身)이 됐다. 지금도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사활을 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학업도 포기한 채 여전히 어렵게 살고 있는 동생들(중소기업)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돌보기는커녕 큰 희생을 강요한 대기업도 적지 않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8월 10차례에 걸쳐 보도한 ‘같이 가야 멀리 간다’ 기획시리즈는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의 모범사례를 발굴해 널리 본받게 하자는 취지였지만 그 반대편 사례도 생생하게 전달했다. 사실 모범사례보다는 납품단가 낮추기, 신기술 탈취, 핵심 인력 빼오기 등을 취재하기가 더 쉬웠다.
한 대기업 간부는 “과거 경험에 비춰 보면 지금처럼 광풍(狂風)이 몰아칠 때는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이슈가 되고 있는 이번만큼은 아닌 것 같다.
대기업들은 이익공유제를 논의하자는 동반성장위원회 본회의를 반(反)시장적이라며 이미 두 번이나 보이콧했다. 앓는 소리를 하는 동생들을 만나지도 않겠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제는 정면으로 부닥쳐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그것이 억울하게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리지 않는 길이자 가난한 집 성공한 맏아들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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