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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커버스토리]한글 보이니 세상이 또렷… 꿈꾸는 삶 행복합니다

입력 | 2012-01-28 03:00:00

마지막 공민학교의 마지막 겨울, 만학도들의 감회■ 서울 기청공민학교를 찾아




일흔에 가까운 한 만학도의 돋보기 너머로 받아쓰기 시험지에 쓴 글자들이 비친다. 글씨 모양은 삐뚤빼뚤하고 틀린 글자도 곳곳에 눈에 띈다. 그러나 뒤늦게 배움의 길로 접어든 이들은 글자를 쓰며 새로운 꿈을 꾼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1. 프롤로그

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꿉니다. 어떤 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달려가고 또 어떤 이는 꿈을 꾼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의 꿈은 이뤄지고 또 누군가의 꿈은 그저 꿈만으로 끝납니다.

그런데 말이죠. 꿈을 꿀 엄두조차 내보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팍팍한 현실 때문에 이루고픈 꿈이 있었다는 사실마저 잊고 살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장 간절한 소원이 무엇인지 물으면 “겨우?”라고 반문할 만큼 소소한 대답이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남들에게 너무도 일상적인 것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꿈인 것이죠.

국내의 마지막 공민학교인 서울YWCA 기청공민학교에서 만난 만학도(晩學徒)들도 그랬습니다. 공민학교는 초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학령을 초과한 사람에게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1946년 이후 설립된 교육기관입니다. 뒤늦은 공부가 쉬울 리 없겠지만 이들이 매일 학교에 가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글을 배우면서 새로운 도전을 꿈꿉니다. 올해 이뤄지든 10년 뒤에 이뤄지든, 아니면 끝내 이뤄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꿈꾸게 된 순간 이미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니까요.

#2. 수업

16일은 기청공민학교가 2주일간의 겨울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를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학교라고 해야 서울 관악구 청림동 봉천종합사회복지관 5층의 교실 하나가 전부입니다. 재학생은 6명. 막내는 만 58세, 맏언니는 올해 희수(喜壽·77세)를 맞았습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여서일까요. 보통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을 마치면 출석률이 저조한 편인데 이날 결석자는 한 명뿐입니다.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청림동 봉천종합사회복지관 5층의 서울YWCA 기청공민학교 교실에서 진구열 교사(왼쪽)와 학생들(재학생 4명, 졸업생 2명)이 국어교과서와 받아쓰기 시험지 등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제대로 공부하려면 역시 학교에 나와야 하나 봅니다. 며칠 쉬었다고 벌써 교과서 문장이 입에 잘 붙지 않습니다. 쓰기는 또 왜 이리 안 되는 걸까요. 수업한 내용에 대해 받아쓰기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 나옵니다. 진구열 교사(55)도 그런 학생들의 마음을 읽었는지 한 문장을 적어도 서너 번은 불러줍니다. 학생들의 답안을 봐가며 조금 어렵다 싶은 단어는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제 7번인가요? 파랗고 높은, ‘파랗고’에서 ‘코’가 아니죠. 앞 글자에 받침이 있고 ‘고’가 있으면 ‘코’로 발음하잖아요. 파랗고 높은 가을하늘을 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다 쓰셨나요? 파랗고, 노랗고, 빨갛고는 다 무슨 받침이라고 했죠? 그렇죠, 히읗 받침이죠.”

이러다 보니 받아쓰기 시험 열 문제를 보는 데 30분이 더 걸립니다. 시험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친절하지만 학생들의 자세만큼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고3 수험생 못지않습니다.

수업을 마치기 전 진 교사가 묻습니다.

“첫날인데 어때요? 힘드셨어요?”

학생들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아니요, 좋아요.”

진 교사의 당부가 이어집니다.

“쉼이라는 게 그래요. 쉬다가 오셨으니까 더 열심히 해서 졸업 때까지는 처음 입학하셨을 때 가졌던 목표들을 꼭 이루셔야죠?”

다음 날 오전 11시 반. 수업은 낮 12시 40분에 시작하는데 마음 급한 학생들은 벌써 책상에 앉아 책을 폈습니다. 오늘은 전원 출석입니다. 선생님이 올 때까지 커피도 타 마시고 서로의 안부도 물으며 수업을 준비합니다. 그러고는 약속이나 한 듯 이날 배울 국어책 166쪽의 ‘우리생활의 골칫덩이 쓰레기’를 소리 내 읽어봅니다. 졸업까지는 이제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 하루하루가 아쉽기만 합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책을 읽고 또 읽습니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도 ‘계속 읽다 보면 나아지겠지’하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오늘 받아쓰기는 어제보다는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빼놓지 않습니다.

수업시간에 맞춰 진 교사가 교실로 들어옵니다.

“차렷! 경례.”

힘찬 구호와 함께 또 하루의 배움이 시작됩니다.

#3. 감사


3년을 공부했는데도 한글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입니다. 그래도 이제 웬만한 글자는 읽을 수 있고, 길지 않은 문장은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들에겐 글자를 알아서 가장 좋아진 게 무엇일까요.

김순이 씨(68)는 “어디 나갈 때 찾아다니기 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박정수(가명·61) 씨는 “현금지급기에서 딴 사람 눈치 안 보고 돈을 뺄 수 있게 됐다”며 즐거워합니다. 김복남 씨(70)는 최근에 병원을 자주 찾았던 모양입니다.

“큰 병원 가면 외과가 어디고, 내과가 어딘지 이제 다 알죠. 접수창구에서도 자신 있게 내 이름을 또박또박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글을 몰라 긴 세월 동안 온갖 설움을 겪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만학도일수록 교사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큰가 봅니다.

2010년 공민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마포구의 일성여자중학교(2년제 학력인정 학교)에 진학한 김은순 씨(59)도 선생님을 향한 사랑이 각별합니다. 그는 2006년 남편이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바깥출입조차 쉽지 않던 때였습니다. 이러다 죽겠지 싶었습니다. 탈출구가 필요했습니다. 컴퓨터라도 배워볼까 하고 인근 복지관을 찾았지만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에게 영어단어는 큰 장벽이었습니다. 큰맘 먹고 40여 년을 미뤄온 초등학교 공부에 정식으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모든 걸 알아서 해주던 남편마저 여의었으니 홀로서기를 위해서라도 한글은 꼭 필요했습니다. 그런 사정을 알아준 스승이기에 감사하는 마음 또한 깊습니다. 진 교사는 김 씨가 공민학교 2학년이던 2008년 스승의 날에 자신에게 전한 편지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오탈자가 눈에 띄는 편지에는 스승을 향한 따뜻함이 오롯이 묻어납니다.

고마우신 선생님께.

선생님, 저 김은순입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에는 몸도, 마음도 몹시 지처 있을 때였습니다. 처음에 공민학교를 찾을 때는 저의 지친 마음을 어디엔가 기대고 싶은 마음에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글을 배운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저도 어릴 때 공부를 하였다면 머릿속은 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한 상태였을 테니까 어떤 그림을 그려도 잘 정돈된 그림이 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50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겠다고 하니! 제 머리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을 하네요.(중략)

선생님, 저희를 가르치시느라 힘드시죠? 답답하시죠! 선생님의 수고로 날마다 조금씩 한글이 커가는 것을 느끼며 행복해하는 김은순입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선생님 ♥랑해요!!!

2008년 5월 15일 김은순 드림

#4. 꿈

학생들은 글자를 통해 꿈을 꿉니다.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꿈도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소박하지만 소중한 꿈입니다. 하루하루 공부하며 단어 하나를 깨칠 때마다 그 꿈은 더 커져갑니다. 곧 꿈을 이룰지 모른다는 생각에 신도 납니다.

지난해 2월 공민학교를 졸업한 최이순 씨(67)는 요즘도 매일 학교에 나옵니다. 그는 공민학교 수업(낮 12시 40분∼오후 3시)이 끝난 뒤 같은 교실에서 두 시간 정도 진행되는 한글수업을 듣습니다. 아직 한글이 부족하다 느끼는 졸업생들을 위해 봉천복지관 측이 배려한 시간입니다. 최 씨는 동대문에서 새벽장사를 합니다. 직접 옷 도매상도 했지만 지금은 월 100만 원을 받고 남의 옷가게를 봐줍니다. 오후 10시 반까지 출근해서 밤을 꼬박 새워야 하는 힘든 일입니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 잠깐 잠을 청하고는 오전 10시쯤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합니다. 몸은 힘들지만 학교를 빼먹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꼭 이루고 싶은 게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받아 적는 겁니다.

“매주 금요일 성경공부교실에 가면 돌아가면서 성경을 읽어요. 처음에는 나만 글을 읽지 못하니까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래도 언제인가부터는 성경도 읽을 수 있게 됐어요. 이젠 목사님 말씀을 써두는 게 소원입니다. 그 좋은 말씀들을 다 머리로 기억할 순 없잖아요.”

전남 신안군의 작은 섬 출신인 박현임 씨(63)는 성격이 매우 활달합니다. 말도 잘하고 주변에는 아는 사람도 많습니다. 학교에서도 반장 역할을 하고 있죠. 그가 예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습니다. 공인중개사입니다. 성격에도 맞는 것 같고 하면 참 잘할 것 같아서랍니다. 하지만 글을 모르는 그가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습니다. 당장 먹고살 일이 급한데 공부를 위해 만사를 제쳐둘 수도 없었습니다. 딸 셋 중 둘이 시집가고 나서야 조금 여유가 생겼습니다. 딸들의 응원을 업고 글을 배운 지 3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그는 꿈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글자만 다 터득하면 늦더라도 부동산 한번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선 결연함마저 엿보입니다.

공민학교 학생 대부분은 손자손녀를 여럿 둔 할머니입니다. 자녀들의 학교공부를 돕지 못해 미안해하던 이들이 어느덧 자녀의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줄 나이가 된 겁니다. 배성애 씨(58)도 손자와 손녀가 둘씩 있습니다. 그중 첫 손녀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갑니다. 하루는 숙제를 하고 있는데 그 아이가 새 지우개를 옆에 두고 가더랍니다. 일곱 살 소녀가 할머니를 응원하는 방식이었던 거죠. 배 씨는 더 힘을 냅니다. 조만간 어린 손자손녀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입니다. 꼭 긴 편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아이들이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그때그때 답장만 할 수 있어도 참 좋겠습니다.

“처녀 때 편지 한 장 멋있게 쓰고 싶었는데 그걸 못했어요. 읽고 쓰는 건 배웠는데 아직은 쑥스러워서 내가 만든 문장을 누구한테 보여주진 못하겠어요. 공부를 좀 더 한 다음 가족들에게 꼭 멋진 편지를 써줄 겁니다.”

그런가 하면 가장 현실적인 꿈을 가진 이도 있습니다. 당장 이루고 싶은, 그런데 말처럼 쉽지가 않은 그런 꿈입니다. 김순이 씨의 꿈은 받침입니다. 받아쓰기를 하는 날이면 이놈의 받침들이 항상 김 씨의 공책을 지저분하게 만듭니다. ‘ㅎ’ 받침인지 ‘ㄷ’ 받침인지, 말하는 것과 쓰는 게 다르다 보니 매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합니다. 세상에는 받침이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 둘로 나뉘는 듯합니다. 받침만 어떻게 잘 해결하면 진도가 쭉쭉 나갈 것 같은데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는 없습니다. 받침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끝까지 해볼 작정입니다. 틀리면 다시 쓰고, 또 틀리면 또 쓰고.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받침을 10개 쓰면 7, 8개는 맞을 날이 오리라고 그는 생각합니다.

#5. 절박함


서울YWCA 기청공민학교 학생들이 17일 교실에서 국어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다. 아쉽게도 기창공민학교는 올해 2월 졸업식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조정희(가명·77) 씨는 매일 한 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옵니다. 그는 뇌중풍으로 네 번이나 쓰러져 한쪽 다리가 불편합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버스 타기가 더 어렵다며 운동 삼아 걸어서 등교하는 걸 고집합니다. 그런데도 눈 오는 날을 빼고는 결석한 적이 없습니다. 글을 모르는 게 ‘한(恨)’이 돼서입니다. 김복남 씨도 강서구 화곡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면 한 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학교 인근에 살다 이사를 간 뒤에도 학업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게 살아가면서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겐 이 같은 절박함이 있습니다. 꿈을 꾸기 위한,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절박함이 뼛속 깊이 사무쳐 있습니다.

기청공민학교가 지금까지 운영된 것도 그 절박함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원래 학교는 2010년 2월 문을 닫을 예정이었습니다. 서울YWCA 측은 그 전해에 운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폐교를 결정했습니다. 2009년 초 입학한 뒤 몇 달 지나지 않아 이 사실을 알게 된 학생들은 똘똘 뭉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학생 동의 없이 어떻게 학교를 없앨 수 있냐고 그들은 세상에 외쳤습니다. 가족이 대신 인터넷 게시판에 민원을 올리는가 하면 학생 전원이 명동의 서울YWCA 본부와 관할 교육청을 수차례 항의 방문했습니다. 교육청에 가서는 한글 실력이 제일 나은 한 명이 대표로 민원신청서를 쓰고 다른 사람들은 옆에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한번은 주민등록증을 모두 가져오라고 했어요. 아마 동의서 같은 걸 받으려고 한 모양이죠. 우리가 글은 몰라도 ‘아’ 하면 ‘어’ 할 줄 알아요. 눈치가 뻔하잖아요. 아무도 안 가져오고 버텼죠.”

박현임 씨는 당시를 기억하며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합니다.

학교 측도 학생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추가 선발하지 않는 대신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를 2년 더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공민학교를 졸업하면 봉천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에 우선 등록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가 남길 원하지만 폐교 결정이 번복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한글을 배울 곳은 찾아보면 많습니다. 각 지역복지관이나 평생학습기관에서 운영하는 한글교실이 넘쳐나고 학력인정을 받을 수 있는 주부학교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그토록 공민학교에 애착을 갖는 것일까요. 이들에게 첫 학교는 단순히 배우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 듯합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뒤 마지막 용기를 내 찾아온 곳이 아니던가요. 꿈을 꾸게 해 주었고, 또 새로운 삶을 살게끔 해 준 곳이 사라진다는 걸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6. 에필로그

기청공민학교는 다음 달 21일 제72회 졸업식을 끝으로 문을 닫습니다. 이 학교의 폐교는 곧 광복 이후의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해온 공민학교의 마지막을 뜻합니다. 6명의 학생이 최후의 공민학교 졸업생인 셈입니다. 공민학교는 배움의 때를 놓친 서민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자 만들어진 교육기관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공민학교를 통해 새로운 삶에 도전했습니다. 마지막 공민학교 학생 6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학교는 사라지지만 꿈을 향한 이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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