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춤꾼 어깨춤에 팍 꽂힌 비주류 작가 “평생 같이 갈 겁니다”
밀양연극촌 성벽극장 객석에서 하용부 씨(왼쪽)의 춤사위를 이윤택 씨가 바라보다 웃고 있다. 하 씨는 이 씨에 대해 “남의 단점을 숨기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했고 이 씨는 “하용부가 내 연기론을 완성시켰다”고 말했다. 밀양=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거기서 특별 공연으로 춤을 췄어요. 공연 뒤 까맣고 자그마한 사람이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다가오더니 대뜸 ‘같이 연극 해보지 않을래요?’ 묻는 거예요. ‘저 놈이 미쳤나? 춤추는 사람이 연극을 왜 하냐’라고 속으로 웃어넘겼죠. 연극판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이윤택이란 건 전혀 몰랐죠.”(하 씨)
이 씨는 연극에서 진정한 모국어의 율격과 이미지를 찾으려 모색하던 중 하 씨의 춤과 마주쳤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1980년대 문학계는 ‘해체’와 ‘실천’의 두 축이 있었는데 그는 ‘해체’ 쪽이었다. 권위주의로부터의 해체, 근대성, 식민주의, 사대주의로부터의 해체를 그는 모색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왜곡되고 굳어 있다고, 현대시가 신라의 향가, 고려 속요보다 못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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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듬해 하 씨를 설득하려고 밀양까지 찾아갔다. 선물이라며 커다란 괘종시계를 품에 안고 온 모습을 하 씨는 생생히 기억한다. 워크숍에서 배우들에게 강의 한번 해달라는 부탁을 하 씨가 수락하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예술적 동거’가 올해로 24년째다.
9일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밀양연극촌을 찾았다.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던 이 씨가 1999년 단원 50여 명을 이끌고 만든 연극 공동체다. 서울도 자주 오가는 두 사람을 굳이 밀양에서 만난 것은 두 사람의 예술적 터전인 밀양에서 인터뷰를 하는 게 마땅하다는 하 씨의 고집 때문이었다. 서울과 부산에 극장을 두고 활동하던 이 씨가 밀양에 연극촌을 세운 것도 하 씨가 이곳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풍성한 예술적 자양분이 됐다. 이 씨는 하 씨를 통해 한국적 몸짓을 연극에 접목한 ‘이윤택의 연기론’을 완성했고 지난해 이를 집대성한 책 ‘영혼과 물질’을 펴냈다.
“우리는 변증법적 관계예요. 전 춤을 못 추지만 하용부의 춤을 보고 그 원리를 깨달았어요. 호흡의 원리도 깨쳤고 연극에 적용했죠. 그런데 정작 하용부는 그걸 몰라. 할배 모방춤이거든. 나는 현상에서 개념을 발견하고 이걸 하용부에게 다시 넣어준 거지. 그냥 춤꾼이던 그가 (나 덕분에) 창조적 아티스트가 된 거야. 하하.”(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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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씨는 이 씨가 연출한 작품 대부분의 안무를 맡았고 ‘오구’, ‘햄릿’ 등 주요 작품에는 배우로도 출연했다. 하 씨의 춤 공연에는 이 씨가 적극적인 조언자 역할을 했다. 2009년 초 프랑스 파리의 ‘상상축제’에 초청된 하 씨가 바스티유 오페라원형극장에서 단독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할 때도 그랬다. “하용부가 무대에서 춤을 다 춘 다음 처음에 앉아 있던 의자로 다시 돌아가 앉더라고요. 그래서 ‘그건 우리 방식이 아니다’고 그랬어요. ‘객석으로 나가 관객에서 손을 내밀라’고.”
하 씨는 이 말대로 객석으로 내려가 할머니 한 분을 일으켜 함께 춤을 췄다.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현지 신문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한국문화는 ‘풀이’라고 했어요. 우리 문화는 풀어내는 것이지 완결성이 아니라는 건데 이게 정말 맞거든. 무대에서 풀어낸 걸 객석에 안겨주니까 감동받는 거지. 그게 바로 소통이라니까요.”(이 씨)
성격적으로도 두 사람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다. “이윤택은 성격이 ‘지랄’ 같고 저는 이 선생 때문에 화난 사람들을 달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외부 사람들이 ‘하용부는 좋은 사람, 이윤택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사실은 아니에요. 배우와 스태프에게 제가 그럽니다. ‘이윤택은 욕을 하면서도 너희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책임 못 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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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