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축포기 가계’ 느는 한국
가계부채가 늘면서 저축을 포기하는 가계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가 힘들수록 미래에 대비하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엔 빚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없어 저축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 싸늘하게 식은 연말 저축 열기
28일 금융계에 따르면 23일 기준 국민, 신한, 우리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총 295조4240억 원으로 지난달 말보다 2조4345억 원 감소했다. 은행들이 추가 금리를 얹어주는 조건으로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신규 가입이 예년만큼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만기 후 재예치하는 고객도 별로 없다. 유럽 재정위기가 심해지면서 고객들이 안정적으로 돈을 맡길 수 있는 예금에 몰릴 것으로 은행들이 기대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우리은행에 1년간 예치해둔 3000만 원짜리 정기예금을 10월 말 찾은 김모 씨(42·자영업)는 이 돈을 잠깐 머니마켓펀드(MMF)에 넣어뒀다가 이달 초 대출금을 갚는 데 썼다. 김 씨는 “빚부터 갚아야지, 재테크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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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어짜도 안 되는 한계상황
과거 경제위기 때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저축을 늘리는 경향이 있었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15.1%였던 저축률은 이듬해인 1998년에 21.6%로 뛰었고, 카드사태가 일어난 다음 해인 2004년의 저축률은 8.4%로 2003년보다 3.6%포인트 높아졌다. 2009년의 저축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난 2008년에 비해 1.6배 수준으로 높았다.
그러나 최근 가계부채가 900조 원에 이르면서 대다수 가계는 ‘아무리 쥐어짜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바짝 마른 수건’ 같은 상황에 몰렸다. 금융감독원이 통계청과 함께 전국 1만 가구를 표본 조사한 결과 가구당 평균 부채는 지난해 4618만 원에서 올해 5205만 원으로 12.7% 늘었다. 소득에 비해 지출이 많은 적자가구의 비율은 3분기 기준 28.2%로 2분기보다 2%포인트 증가했다. 결국 소득 증가세 둔화, 부채 급증, 국민연금이나 사회보험 같은 부담금 증가 등의 요인이 맞물려 저축을 포기하는 가구가 늘어난 것이다.
2010년 기준 한국의 저축률은 4.3%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처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4%)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계속되면 투자재원이 고갈돼 성장잠재력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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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