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며 유럽산 자동차를 싸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소비자들의 기대감이 무너지고 있다. 일부 업체가 관세 인하 효과에도 오히려 가격을 높이기로 해서다.
벤츠, BMW 등 수입차 업체들은 올 상반기만 해도 FTA 발효에 맞춰 가격을 내리고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기존 8%였던 1500cc급 이상 유럽산 수입차의 관세가 5.6%로 낮아지며 가격을 낮출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FTA 효과’에 힘입어 올 7∼9월 유럽산 수입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7% 늘었다.
활기를 띠던 수입차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내 2위 수입차 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내년 1월 1일자로 가격을 평균 0.5% 올리겠다고 27일 밝혔다. 올 6월 FTA를 맞아 가격을 평균 1.3% 내린 지 반 년 만에 다시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이번 인상은 수익성이 저하되고 있는 독일 본사가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는 한국 등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세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1위인 BMW코리아도 이달 2일 출시한 신형 528i 가격을 기존 모델(6790만 원)보다 약 0.7% 오른 6840만 원으로 책정했다. 회사 측은 “신형 엔진을 탑재하고 다양한 편의장치를 추가해 실제로는 가격을 낮춘 셈”이라고 설명했지만 과거 신형을 내놓으면서도 가격을 오히려 낮춰 판매량 높이기에 주력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1% 미만의 가격 인상폭은 얼핏 보기에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올 7월 관세 인하(8%→5.6%)로 1.3∼1.4%의 가격 인하 효과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 상반기에 비해서는 가격이 사실상 2%가량 오른 셈이다. 대다수 업체가 가격을 인하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입차 판매 1, 2위인 이들 업체의 가격 인상은 ‘잘 팔리니 가격을 올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 큰 문제는 FTA를 통해 앞으로 점차 늘어날 관세 혜택을 업체들이 ‘마진 늘리기’에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데 있다. 현재 5.6%로 낮아진 유럽산 수입차 관세는 내년 7월 3.2%, 2013년 1.6%로 단계적으로 낮아지며 2014년 7월부터는 무(無)관세가 된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격을 내릴 수 있는 폭이 커지지만, 가격 인상이 지속되면 업체들만 배를 불리는 것이다.
이진석 산업부 기자
이진석 산업부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