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서 2월 12일까지 1부 ‘김생에서 추사까지’ 전시
중국의 왕희지와 그 이전의 글씨를 혼융한 추사체를 통해 글씨 역사의 틀을 바꾼 추사의 작품. 예술의전당 제공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김생의 탄생 1300주년을 기념한 ‘필신’전을 기획한 이동국 학예사가 김생의 ‘송하빈객귀월’을 확대한 도판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고 있다. 중국과 같고도 다른, 우리 글씨의 전형을 세운 인물로 김생과 더불어 한국서예의 거장들을 재조명한 전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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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예와 같고도 다른 궤적을 걸어온 한국 글씨 미학의 역사를 짚은 전시란 점에서 뜻이 깊다. 1부 ‘필신-김생에서 추사까지’는 내년 2월 12일까지, 2부 ‘도를 듣다, 聞道-김생과 권창륜 박대성 1300년의 대화’전은 2월 15일∼3월 4일 이어진다. 5000∼7000원. 02-580-1660
○ 한국서예 전형의 탄생
탁본한 시기가 각기 다른 김생 글씨의 비문을 보면 한 가지 차이가 있다. 후기 탁본에선 비석의 깨진 흔적이 선명히 드러난다. 중국 사신들이 압록강을 건너는 순간 너나없이 김생 글씨를 요청하는 바람에 ‘탁본 노역’이 심했던 탓으로 추정된다.
나라 밖에서도 탐냈던 글씨의 주인공 김생은 한국 서예의 전형을 처음 만든 인물이다. 그는 통일신라 이전 고박한 삼국시대 글씨를 토대로 중국의 왕희지와 엄정한 당나라 글씨(唐法)를 한데 녹여 우리 글씨미학의 법을 세웠다. 그의 필적으로 전해오는 것은 ‘태사자낭공대사비’와 조선시대 만든 탁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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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서예 전형의 완성
특별전은 김생에 이어 시대별로 서예 명품을 통해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면서도 우리 미의식에 맞게 재해석한 한국 서예의 독자성을 보여준다. 그 맥락에서 추사 김정희의 존재는 단연 빛을 발한다. 왕희지, 그 이전의 중국 글씨까지 각종 서체를 통합해 고졸미의 추사체를 완성한 그는 우리 서예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전시에선 ‘행초팔곡병’ 등 글씨로 해탈의 경지에 이른 추사의 세계를 볼 수 있다.
이 밖에 고려 탄연의 귀족적 글씨, 조선의 4대 명필로 거론되는 안평대군의 웅장하고 활달한 글씨와 한석봉의 ‘석봉진적첩’, 퇴계와 서산대사의 필적 등 글씨의 다양성을 접하면서 안목을 높일 기회다. 다른 문화를 수용해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다시 이를 넘어 보편적 미의 정신을 구현한 글씨들이 우리 미의식의 뿌리를 일깨워준다.
한자문맹사회도 변화하면서 필신의 존재는 잊혀졌다. 한국 서예사를 압축한 이번 전시는 리움의 조선화원대전과 맞물려 고미술에 대한 이해와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알찬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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