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양산형 ‘레이 EV’ 출시최고시속 130km 가속력 우수
기아차가 22일 출시한 ‘레이 EV’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양산되는 고속 전기차다. 6시간(완속 기준)을 충전하면 최장 139km를 달릴 수 있다. 기아차 제공
이로써 지지부진했던 전기자동차의 국내 공급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난 중소업체가 앞서 선보였던 저속 전기차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양길에 접어드는 사이 국내 주요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의 대량생산을 위한 연구개발을 해왔다. 이들은 우선 기존 일반 차량을 기반으로 개발한 전기차를 정부나 관공서 중심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 뛰어난 가속능력 인상적
이날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 시험주행로에서 기자가 직접 타본 레이 EV는 현대자동차가 앞서 선보였던 ‘블루온’은 물론이고 양산형 전기차의 원조 격인 일본 미쓰비시의 ‘아이미브(i-MiEV)’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 성능을 보여줬다.
시동을 걸면 아무런 소리 없이 계기반에 ‘준비(ready)’ 표시만 나타난다. 주행 모드는 일반주행(D)과 에코(E), 브레이크 주행(B) 등 3가지다. D에 놓고 가속페달을 밟자 전기모터가 회전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속도를 붙여갔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15.9초. 1L급 휘발유 엔진을 사용하는 동급 경차보다 가속 성능이 좋다. 최고속도인 시속 130km까지의 가속도 큰 무리가 없었다. ‘E’ 모드로 주행하면 가속능력이 약간 줄어들고 히터 등 공조장치 출력도 낮춰 전력 소모를 줄인다. ‘B’ 모드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모터에 전달되는 동력을 끊어 차가 멈출 때 발생하는 제동에너지를 배터리 충전에 쓴다. 변속기를 ‘B’로 바꾸면 일반 승용차의 기어 단수를 낮출 때 발생하는 엔진 브레이크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운전 중 적극적으로 배터리 충전을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모드다.
레이 EV는 현대차 ‘블루온’과 같은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이온폴리머전지를 사용한다. 급속 충전은 25분, 일반 충전은 6시간이 걸린다.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는 139km(도심주행 측정 기준, 내년부터 실시되는 복합주행 기준으로는 91km)다. 에어컨을 쓰면 주행 가능 거리가 20%, 히터를 쓰면 39% 줄어든다.
기아차는 레이 EV를 일반 휘발유 모델이 생산되는 충남 서산 동희오토 공장에서 함께 생산하기로 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일반 차량과 같은 조립 과정을 통해 안정된 품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 블루온이 단순한 ‘기술적 과시’에 그쳤다면 레이 EV는 실제 판매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는 차이가 있다. 현대차는 블루온을 정부기관에 280여 대 공급하는 데 그쳤으며 일반 판매는 하지 않기로 했다.
기아차는 이 차를 내년 정부 관공서에 총 2500대 생산해 판다. 이르면 내년 말이나 2013년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판매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는 르노삼성이 준중형 전기차 ‘SM3 Z.E’, 한국GM이 경차 ‘스파크’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 시범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어서 업계는 2012년을 ‘전기차 보급의 원년’으로 보고 있다.
○ 정부 보조금과 충전 인프라가 관건
레이 EV는 현대·기아차가 올 3월 기존 하이브리드차 개발팀과 전기차 개발팀을 통합한 친환경차개발실을 출범시킨 후 처음으로 내놓은 전기차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모두 배터리 개발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만큼 부서를 통합 운영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생산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높은 배터리 가격이다. 레이 EV의 판매 가격은 미정이지만 생산원가를 감안할 때 대당 4500만∼5000만 원이 될 것으로 회사 측은 보고 있다. 정부 보조금 지원이 없다면 일반인 구매가 어려운 수준이다.
지식경제부는 21일 레이 EV와 SM3 Z.E의 세제지원 방안을 내놨다. 내년 1월부터 공공기관이나 소비자가 이 차량들을 구입하면 최대 420만 원의 세제 혜택을 주지만 경차인 레이 EV는 전기차 세제지원을 받는 것보다 기존 경차 세제지원(554만 원)이 금액이 더 커서 실효성이 없다. 정부는 이와 별도로 차량 크기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할 예정이며 환경부가 600억 원의 예산안을 편성한 상태다. 결국 관건은 보조금이 이들 전기차 구입가격을 현실적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정도로 책정되느냐에 달려 있다.
충전시설 구축도 풀어야 할 과제다. 현재 전국에는 500여 대의 전기차 충전기가 설치돼 있다. 정부는 이를 내년까지 3100여 대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화성=이진석 기자 ge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