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예대상 한류작곡가상
용감한 형제는 “실패는 겁나지 않는다. 도전이 즐겁다”며 “‘가진 것도 없는 놈이 배포만 크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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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릿발 같은 눈매, 단단한 어깨, 까칠한 콧수염… 격투기 선수 같은 인상이었다. K-pop을 대표하는 작곡가 겸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본명 강동철·32)다.
마침 그가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한류작곡가상을 받은 다음 날인 16일 그를 만났다. 그는 손담비의 ‘미쳤어’와 ‘토요일 밤에’,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어쩌다’, 빅뱅의 ‘마지막 인사’, 이승기의 ‘정신이 나갔었나봐’, 씨스타의 ‘소쿨(So Cool)’ 등 말랑말랑한 히트 곡을 만들며 유명해졌다.
“3, 4년 전이라면 기뻤겠지만 지금은 작곡가보다는 제작자로 마음이 돌아섰기 때문에 크게 기쁘지 않았어요. 그 대신 한류제작자상이라는 새 목표가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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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토크쇼를 통해 알려진 대로 그는 파란만장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17세에 소년원에 수감됐고, 보호관찰처분이 끝난 19세에도 룸살롱 영업부장을 하며 거친 길을 갔다. 꿈은 조직폭력배였다.
“배운 것도 없고, 집 도움 받기도 싫고, 어쩌다 보니…. 업소 DJ 동생이 틀어준 힙합음악을 듣고 인생이 180도 바뀌었죠. 미치도록 뭔가를 하고 싶었던 건 처음이었어요.”
‘이런 음악을 해보자’는 생각에 가진 돈을 털어 음악 장비를 샀다. 모범생 형 강흑철(예명 미스터 강)까지 의기투합했다.
집을 나와 고려대 공사장에서 등짐을 지는 막노동을 하며 밤마다 음악만 공부했다. 등짝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났다. 악기 살 생각에 굶기도 예사였다. 주먹 쓰며 쉽게 돈 벌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를 붙잡은 건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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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처럼 날 선 눈매가 점점 순해졌다. “그래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합니다.” 인상 때문에 그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공항에서 검문을 받는다고 했다. 왼팔에 가득 찬 문신도 문제였다.
“처음 문신을 한 건 10대 때예요. 팔다리에 자해한 흔적이 많아서 감추려고 문신을 했는데, 돈도 없어 말도 안 되는 그림을 막 판 거예요. 그걸 커버하느라 문신이 더 커졌어요. 나이 먹으니 후회돼요.”
그는 4년간 저작권료와 프로듀서 진행비로 50억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일 정도로 성공한 남자다. 집도 없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옥 꼭대기 층에 살며 하루 3∼4시간씩 자고 일한다.
“성격이 지랄 같아서 일 남겨 놓고 못 자요. 힘들지 않느냐고요? 오너가 후회하는 순간 회사가 휘청댑니다. 사랑도 결혼도 회사를 YG만큼 대형기획사로 키우기 전까지는 휴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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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의식과 끈기죠. 요즘 아이들은 간절함이 많이 없어요. 쉽게 그만두고, 나약해요.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로 미치도록 연습했으면 해요. 잘되는 사람은 눈빛부터 달라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맨손으로 일어선 그의 성공담은 우리 시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됐다. “닮고 싶다”며 인터넷 쪽지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지금 방황하는 10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방황하고 싶으면 마음껏 하라는 거예요. 단, 자기 자리를 찾아오는 것도 부모가 아니라 자기 몫이죠. 자기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죠.”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박영욱 동아닷컴 기자 pyw0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