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반면 공동 6위에 그친 한화 한대화, 꼴찌 넥센의 김시진 감독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자주 카메라에 잡혔다. 한대화 감독은 나쁜 전력에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고 해서 ‘야왕(野王·야구의 왕)’이란 칭호까지 얻었다. 5월에 사장과 단장이 한꺼번에 교체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새 집행부가 들어오면 감독도 바뀌는 게 십중팔구인데 말이다.
이제 사령탑에 대한 평가는 성적도 중요하지만 구단이 추구하는 경영 철학이나 팀의 미래 등이 주요 기준이 되는 시대가 됐다. 김성근 감독과 일본 주니치의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은 우승을 밥 먹듯이 하고도 성적에만 목을 매는 야구를 한다고 잘렸다. 특이하게 김경문 감독처럼 스스로 그만두는 사례도 나왔다.
그럼에도 이번 조광래 감독의 전격 경질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끈 허정무 감독이 물러나자 차기 사령탑으로 전북 최강희, 울산 김호곤 감독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고사했다. 축구협회는 고심 끝에 조 감독을 발탁했다. 조 감독은 속칭 ‘축구 야당’이다. 당시 경남 사령탑이었던 그는 ‘조광래의 아이들’로 불리는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을 키워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축구협회는 이런 조 감독의 지도력을 대표팀에 수혈하는 한편 비주류를 끌어안아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순항하던 조광래호는 8월 한일전과 11월 월드컵 3차 예선 레바논전에서 패퇴했다. 대표팀이 예선 탈락한 것도 아니고,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이청용 등의 공백이 있었다는 것은 고려할 변수조차 아니었다. 다만, 조 감독과 협회의 1년 7개월간 쌓인 불화만 뒤늦게 부각됐다. 결국 처음부터 이들의 만남은 잘못된 만남이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에 조광래호의 잇따른 패배에 등을 돌렸던 팬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축구협회의 섣부른 감독 경질을 비난했다.
조 감독은 3차 예선까지 계약된 예선용 사령탑이긴 하다. 구원투수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다면 바꿔주는 게 맞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 조 감독의 축구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꺾여 버린 것은 너무 아쉽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