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을 바꾼 만남/정민 지음/592쪽·2만3800원·문학동네
장가들어 신혼의 재미에 빠진 제자의 공부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겨 스승이 제자에게 각방을 쓰라고 훈계한 것이다. 제자는 노한 스승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한 뒤 신혼집을 뒤로하고 절로 올라갔다. 다산 정약용(1762∼1836)과 그의 전남 강진 유배 시절 제자 황상(1788∼1870)의 이야기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1년간 연재한 글을 묶은 이 책은 다산과 황상의 각별한 사제의 정을 담았다. 서문에서 저자는 “사제의 정리는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물질적 교환가치에 의한 거래만 남았다. 나는 이것을 슬퍼한다”고 집필 계기를 밝혔다.
다산은 신혼의 제자에게 각방을 명할 정도로 공부하라고 닦달했지만 황상이 써온 시에 “제자 중에 너를 얻어 참 다행이다”라고 적어 보낼 만큼 각별한 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산이 유배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돌아온 뒤 황상도 강진 읍내를 떠나 백적산 깊은 골짝으로 들어가 살면서 둘의 연락은 두절된다. 서로의 진심이 통해서였을까. 1836년 둘이 18년 만에 재회하고 얼마 뒤 스승은 눈을 감는다. 저자가 발품 팔아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산과 황상의 인연을 한 꺼풀씩 벗겨보는 것이 흥미롭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