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니들 ★★★☆
불행한 소녀가 만들어낸 상상세계는 안식처이자 감옥이다. 왼쪽부터 첫째 역의 김현영, 셋째 역의 김원진, 둘째 역의 김민선 씨. 코르코르디움 제공
무대의 공간은 극 중 ‘셋째’(김원진)의 환상세계다. 셋째의 등장에 이어 첫째 언니(김현영)와 둘째 언니(김민선)가 방에 들어와 서로에 대한 험담을 멈추지 않으며 웃고 떠든다.
세 쌍둥이를 자처하는 이들은 차를 몰고 동창회 모임에 가다가 브레이크가 고장 나 낯선 사내를 친다. 의식이 없는 사내를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끌고 온 자매들은 그 뒤처리를 놓고 날선 공방을 벌인다. 시간이 지난 뒤 사내의 정체가 옥수수밭을 지키던 허수아비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이번엔 그 허수아비가 살아난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허수아비들까지 가세해 세 자매에게 미래의 아기들을 임신시킨다. 세 자매의 상상엔 브레이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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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어. 우리 나이가 몇일까? 우리는 미쳤어. 너무 외로워서 미쳤다고.”(첫째)
“우리는 죄를 지었어. 기억을 지어낸 죄.”(둘째)
“언니들은 죽었어. 나는 언니들 없이 혼자 끝없는 시간을 살아가야 해.”(셋째)
시인 출신 극작가 최치언 씨의 작품답게 밀도높은 언어가 빛을 발한다. 2009년 극단 뚱딴지에서 공연된 이 작품을 새롭게 연출한 극단 백수광부의 이성열 대표는 2년 전보다 젊고 발랄한 배우들을 기용하면서 좀 더 동화적 무대로 극의 환상구조를 강화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발랄했기 때문일까. 극이 다루는 세계가 끝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것을 관객이 맞닥뜨렸을 때의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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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18일까지 서울 대학로 정보소극장. 2만 원. 02-889-356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