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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빛과 소금으로]서울 동선교회

입력 | 2011-11-18 03:00:00

부끄럽기는커녕 가슴 뿌듯한 ‘사랑의 빚’




서울 강동구 천호동 동선교회는 동쪽에 위치한 신앙의 구원선 같은 교회를 표방하고 있다.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을 통해 한국 개신교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 빚이 많아서 즐겁다? 부끄럽기는커녕 자랑스럽다. 서울 강동구 천호3동 동선교회 얘기다. 최근 만난 박재열 담임목사(62)는 2002년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본부’를 설립했다. 신자가 30명 미만인 미자립 교회들이 지원 대상이다. 올해 150개 교회를 포함해 지난 10년간 900여 개의 교회를 지원했다. 지원하는 교회는 초기 15개에서 50개로, 이제는 150개까지 해가 갈수록 늘었다. 그사이 작은 교회 지원과 교회 건축으로 쌓인 빚은 50억 원에 달한다. “교회 일부에서 남 돕는 것은 나중이고 우선 내 빚부터 갚자는 의견도 있어요. 그러나 빚이 있어야 바쁘게 열심히 살아요. 빚 대신 재산이 많으면 일부 교회에서 본 것처럼 싸우느라 바쁩니다. 빚이 100억 원은 되어야 빚 좀 졌다고 하는 것 아닌가요.(웃음)”(박 목사) 이런 적지 않은 빚이 교회에서 용납되는 것은 그 스스로 ‘사랑의 빚’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작은 교회 돕기에 나서면서 지원비의 절반을 본인이 부담하겠다고 약속했다. 월급은 물론이고 부흥회와 연간 60∼70회 강연으로 받는 돈의 대부분이 지원비로 들어간다. 자신의 퇴직금 3억 원도 가불해 이미 작은 교회 돕기에 써버렸다. 》

1982년 교인 6명으로 시작한 이 교회의 출석신자는 5000여 명이다. 그는 중형 교회 담임목사이지만 25평 연립주택에 산다.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본부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조별로 나눠 토론을 하고 있다. 동선교회 제공 

박 목사는 예장 대신 교단의 총회장을 지냈지만 작은 교회 지원은 교단과 관계없는 초교파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물었다. 굳이 담임목사나 신자들 모두 버거운 이 길을 갈 필요가 있을까? 답변은 간단했다. 교회 이름의 동선(東船)은 강동구, 즉 동쪽에 있는 신앙의 구원선을 의미한다.

“그럼 작은 배보다 큰 배가 구원선으로 유리하지 않습니까.”(기자)

“큰 배는 가진 것이 많아 제 역할을 못합니다. 냇물이 살아나야 강이 사는 것처럼 작은 교회가 살아야 한국 개신교 전체가 살 수 있습니다.”(박 목사)

“작건 크건 교회가 너무 많다는 비판도 있습니다.”(기자)

“교회는 많을지 몰라도 제 역할을 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박 목사)

이 본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교회는 5만여 개로 추산되는데 매년 500∼600개가 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신자가 30명 미만으로 존립 자체가 어려운 교회가 많아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 큰 문제다.

이 교회는 단지 돈만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매우 까다롭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목회자들은 훈련 서약서를 쓰게 된다. 청장년 출석 신자가 100명이 될 때까지 휴가나 해외여행 금지, 매주 3일 이상 교회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고 설교 준비를 할 것, 월 1회 부부가 함께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할 것…. 평가점수에 따라 월 30만 원의 지원비가 차등 지급된다.

이 교회의 활동에 영향을 받아 생긴 ‘작은 교회 살리기 연합’ 총무 이창호 목사는 “실핏줄 같은 작은 교회들이 자립해야 한국 개신교가 건강해진다”며 “작은 교회 운동이 뿌리를 내리면 일부 대형 교회에서 보이는 세습과 교회 내부 갈등 등 많은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동선교회의 또 다른 날개는 나눔 프로그램이다. 이 교회에는 일요일마다 필리핀 교회가 생긴다. 필리핀 출신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 여성 30∼40명이 교회 공간을 빌려 예배를 올리고 있다. 2008년부터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예식 지원 사업을 시작해 10쌍의 결혼식을 지원했다.

은퇴 목사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은퇴 목회자들의 활동 공간이 없는 것도 우리 개신교회의 문제점이다. 이 교회는 은퇴 목회자들을 경제적으로 돕고 직접 전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교회는 지역 노인 150여 명을 제주도로 효도여행을 보내고, 크리스마스 전후에는 선물 1000여 개를 준비해 주변의 이웃들과 나누고 있다. 교회에서 만난 신자 신희철 씨는 “우리 교회는 다른 곳에서 생각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다”며 “교회의 울타리를 넘은 활동이 많아 벅차기도 하지만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박재열 목사의 ‘내가 배우고 싶은 목회자’ 김진호 목사▼

감리교 감독회장을 지낸 김진호 목사(72)가 2008년 갑자기 교회를 찾아왔다. 그분은 교계 원로이지만 교단도 다르고 일면식도 없어 뜻밖의 방문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미자립 교회 돕기가 정말 필요하다며 우선 감리교 내부에서도 이런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아들딸 같은 목회자들이 미자립 교회를 맡아 건강을 해치고 목회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아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교단장을 지냈지만 권위 대신 어려운 후배들을 위한 헌신을 선택했다. 나이와 경력에 관계없이 한국 교회의 밀알이 되겠다는 그분의 간절한 소망이 느껴졌다. 그 뒤 그분은 ‘비전교회와 함께하기 운동본부’를 설립해 미자립 교회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목사인 남편과 사별한 ‘홀사모’ 돕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