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강부언 씨 “대정향교 소나무”나무전문가 ‘소나무-곰솔나무’ 추정… “중국시 내용 그려” 주장도… 의견분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1844년·국보 180호)와 제주 화가 강부언 씨의 ‘세한도’(2011년·오른쪽 아래). 추사 ‘세한도’의 오른쪽 나무는 노송이지만 나머지는 무슨 나무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향교의 소나무를 그린 제주 화가 강 씨는 “추사가 대정향교의 노송을 보고 세한도 소나무를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동아일보DB, 공아트스페이스 제공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인 1844년에 그린 조선시대 문인화의 정수다. 강 씨가 추사의 차가운 정신을 되새기며 그린 ‘세한도’는 추사 유배지 인근인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대정향교의 소나무를 표현한 작품이다. 강 씨는 “추사가 대정향교의 소나무를 보고 세한도를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추사 ‘세한도’ 속 나무 가운데 오른쪽의 휘어진 노송이 대정향교의 소나무와 흡사하다는 말이다.
관람객들은 강 씨의 추론에 흥미를 느끼며 추사 ‘세한도’에 나오는 나무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한다. 추사 ‘세한도’에는 나무가 네 그루 나온다. 사람들은 대체로 “오른쪽 두 그루는 소나무, 왼쪽 두 그루는 잣나무”라고 말해 왔다. 과연 그런가. 추사 ‘세한도’에 나오는 나무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맨 오른쪽 나무는 소나무가 확실해 보이지만 나머지 세 그루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추사 ‘세한도’가 실제 풍경인지, 관념상의 풍경인지 구분이 필요하다. 실경을 그렸다고 할 때 ‘오른쪽 두 그루는 소나무, 왼쪽 두 그루는 잣나무’란 말은 옳지 않다. 잣나무는 제주에서 자라지 않는다. 맨 오른쪽 나무는 소나무가 맞다. 하지만 나머지 세 그루는 곰솔나무로 보인다. 곰솔은 소나무의 일종이지만 소나무보다 잎이 억세고 길다. 관념 속 풍경이라고 해도 잣나무는 아니다. ‘세한도’의 발문과 ‘논어’에 나오는 송백(松柏)의 ‘백’도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 또는 침엽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실경을 그린 것인지 아닌지도 궁금하다. 추사 연구가 박철상 씨는 “세한도는 추사가 연행사로 중국에 갔을 때 대학자 옹방강의 집에서 본 시의 내용을 화폭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본다.
“소동파를 흠모하며 옹방강이 지었다는 시를 추사가 직접 읽었다. 이 시에는 ‘고목이 된 소나무는 비스듬히 나뭇가지 드리우고 집에 기대어 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추사는 제주 유배지에서 이 시구와 제자 이상적을 떠올리며 ‘세한도’를 그린 것이다.”
박 씨에 따르면 제주의 실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한도’에 나오는 집의 모양이 중국풍이란 얘기도 이 같은 추론에 무게를 실어준다.
정답은 없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제주 화가 강 씨는 대정향교의 소나무에서 ‘세한도’의 노송을 떠올렸고 그렇게 또 한 점의 21세기 세한도를 탄생시켰다. 추사 ‘세한도’는 이래저래 다양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 낸다. 그래서 더더욱 명품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