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년 대출병폐 메스 든 김석동
김 위원장은 올 1월 취임 이후 줄곧 금융계 및 정치권과 싸웠다. 원래 그의 머릿속에는 ‘저축은행 부실 정리, 가계부채 해결 및 외환시장 건전성 확보, 중소기업 금융대책’이라는 세 가지 과제가 들어 있었다. 부실 저축은행을 처리하는 사이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치로 치솟았고 외환시장은 유럽국가의 재정위기로 요동쳤다. ‘성과를 못 내는 장관’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김 위원장이 구상하는 ‘중기 돈줄 개혁’의 뼈대는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와 작은 위험도 감수하려 하지 않는 심사관행 때문에 연명하는 ‘좀비 중소기업’에 정책자금 대출을 끊고, 젊은 창업자와 유망 회사에 자금이 공급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 대출 관행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는 ‘비올 때 우산 뺏는’ 고질적인 대출 관행을 바꾸기 위해 “‘사업성 평가 절차만 지켰다면 대출 후 부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내용을 금융감독규정과 은행 내규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초 은행인 한성은행이 1897년 설립된 뒤 국내 은행이 금과옥조로 삼아온 담보 및 보증 중심의 대출체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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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대출 관행을 바꾸면 중소기업 연쇄도산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은행에 부실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감독규정은 나중에 금융부실이 커지면 배임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금융위의 이런 방침이 알려지면 한나라당과 청와대에서 반발할 개연성이 높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표를 얻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협의했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권한 내에서 책임을 다하라고 위원장을 시킨 것 아닌가. 문제가 생긴다면 내가 책임지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외롭고 도발적인 실험에 금융권의 시선이 쏠려 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