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내한 공연 ★★★★☆
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이끄는 상트페테르부르크필과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가운데)이 협연했다. 두 사람은 연주 중간중간 눈을 맞춰가며 빼어난 호흡을 보여주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러시아 음악은 역시 늦가을이 제격인가. 1802년에 창단한 이 러시아 대표 오케스트라는 지난 두 차례의 방문과 같이 11월에 맞춰 음악의 성찬을 꾸렸다. 랴도프의 앙증맞은 교향시 ‘키키모라’에서 무대는 악기로 가득 찼다. 저현악기가 왼쪽으로 가고 금관이 오른쪽으로 완전히 쏠리는 소위 ‘레닌그라드 편성’이다. 20세기 들어 대부분 오케스트라가 첼로를 오른쪽으로 가져갈 때도 고집스럽게 옛것을 고수했던 전임지휘자 므라빈스키의 발자취다. 유쾌한 러시아 민요가 흘러나왔다. 고희를 넘긴 테미르카노프의 현란한 맨손 지휘는 여전했다.
사라 장이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위해 무대로 나왔다. 현의 트레몰로에 얹히는 독주 바이올린의 날카로운 음색은 농익을 대로 농익었다. 난삽한 악구들은 완전히 평정되고 기교는 절정에 와있었다. 이미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광장축제에 초대받아 여러 번 만난 거장과의 호흡도 완벽했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지나친 자신감은 비브라토의 진폭을 깊고 길게 가져갔고 과도한 몸동작은 음악을 듣기보다는 보는 것에 더 치중하게 만들었다. 핀란드 예르벤페에 있는 시벨리우스의 집 아이누라가 반추되는 2악장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북구의 서정은 ‘미국식 밝음’으로 대체되는 느낌이었다.
앙코르로 차이콥스키의 ‘러시안 댄스’가 끝나자 청중은 모두 기립했다. 므라빈스키의 어록으로 감동을 마무리한다. “나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음악의 힘을 믿는다. 언젠가 음악을 들을 때 마치 벼락이 치는 것과 같고, 해머로 강하게 때리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바로 이렇게 예술이란 강렬해야 한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poetandlove@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