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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이호성]그리니치 표준시와 윤초

입력 | 2011-11-09 03:00:00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미래융합기술부장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는 경도 0도선(본초자오선)과 그리니치 표준시(GMT)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리니치 천문대가 이렇게 유명해진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18세기 초 프랑스의 지중해 함대와 교전한 후 귀국하던 영국 전함 4척이 경도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영국 땅을 코앞에 두고 암초와 충돌해 병사 2000여 명이 바다에 수장됐다. 이 사건으로 영국 의회는 지구상에서 경도를 측정하는 유용한 방법을 찾는 사람에게 2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수십억 원)의 상금을 준다는 경도법을 제정했다.

정확한 시간을 알면 경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많은 시계공들과 천문학자들이 약 50년 동안 경쟁적으로 연구했다. 정확한 시계는 시계공들이 만들었다. 천문학자들도 당시 뱃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측정 장치와 항해력을 만들어 제공했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표준시간을 알려주는 것 외에도 뱃사람들이 바다에서 배가 있는 위치(경도와 위도)를 알아내는 데 필요한 해와 달 그리고 여러 별들의 위치 데이터를 제공했다. 매달 발간되는 이 자료는 항해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사용됐고, 그리니치 천문대는 자연스럽게 세계의 기준이 됐다.

그리니치 표준시는 태양을 기준으로 정한다. 즉 태양이 본초자오선을 통과하는 시점을 정오로 하고, 그 다음 날 정오까지를 하루로 잡는다. 그런데 그 하루의 길이가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1년 동안 평균해 평균태양일이라 하고, 평균태양일을 8만6400등분해 1초를 정의했다.

그런데 정확한 원자시계가 발명되면서 평균태양일로부터 정의된 1초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확하고 안정적인 1초를 만들기 위해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는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시계 대신에 세슘원자시계를 사용하기로 1967년 결정했다. 그런데 원자시계에 의한 1년의 길이가 태양에 의한 1년의 길이와 다를 수 있다. 이것을 보상하기 위해 1년에 1초를 더하거나 빼는 ‘윤초’를 1972년 도입했다. 윤초는 2009년 1월 1일까지 총 24초가 더해졌다. 윤초를 더한다는 것은 1분이 60초가 아니라 61초가 된다는 것이다.

윤초의 도입 여부는 지구 자전을 관측하는 국제기구(IERS)에서 관장한다. 윤초의 적용 시점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경우 6월 30일이나 12월 31일에, 우리나라는 9시간 이른 7월 1일이나 1월 1일 오전 8시 59분 59초에 실시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각 나라의 표준시간을 제공하는 원자시계들을 운용하고 있다. 또한 내비게이션 신호를 공급하는 인공위성에도 각각 둘 내지 세 대의 원자시계가 탑재돼 있다. 윤초를 적용하려면 이 모든 시계의 초침을 바꾸어 주어야 한다. 그 작업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윤초 적용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는 윤초를 적용하지 않는 시간 척도인 원자시를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영국이 20세기에 대영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에 바다를 지배할 수 있는 항해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 항해술의 근간에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포함한 천문학자들과 시계공들의 정확한 시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큰 기여를 했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원자시계가 등장하면서 그리니치 천문대의 위상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시간이 흐르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다.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미래융합기술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