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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음식이야기]닭도리탕

입력 | 2011-11-03 03:00:00

일제강점기 무렵 먹기 시작한 ‘평양 특산물’




월간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 제공

토막 낸 닭고기를 감자와 함께 고추장으로 조리한 음식이 닭도리탕 또는 닭볶음탕이다. 음식 이름을 놓고 논란이 많은데 국어사전에는 닭볶음으로 나온다. 일반적으로 닭도리탕은 왜색이 짙은 말이니 쓰지 말아야 한다고 하며 그 대신 닭볶음탕이 맞다고 주장한다.

‘도리’는 일본말로 새를 뜻하는 ‘도리(とり)’에서 비롯된 것이니 닭도리탕은 ‘닭닭탕’이라는 것이 주장의 근거다. 하지만 닭도리탕이 일본말 도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어느 주장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도대체 왜 음식 이름 하나를 놓고 이런 논란을 벌이게 된 것일까. 이유 중 하나는 닭도리탕을 먹기 시작한 역사가 짧기 때문인 것 같다.

조선시대의 닭고기 음식 중에 닭도리탕은 보이지 않는다. 주로 닭죽(鷄粥), 닭찜(鷄蒸), 닭백숙(白熟), 닭국(鷄F), 삼계탕의 전신인 계탕(鷄湯)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1920년대의 몇몇 문헌에 비슷한 이름의 음식인 도리탕이 보일 뿐이다.

우선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발행된 ‘해동죽지(海東竹枝)’에 한자로 도리탕(桃李湯)이라고 쓴 음식이 나온다. “도리탕은 계확(鷄F)으로 평양이 유명하다. 닭 뼈를 가늘게 잘라 버섯과 양념을 섞어서 반나절을 삶아 익히면 맛이 부드러운데 세상에서는 패수(浿水)의 특산물이라고 한다”고 적었다. 확(F)은 고깃국으로 탕과는 달리 국물이 별로 없는 음식이다. 패수는 평양을 흐르는 대동강이다.

해동죽지의 설명을 보면 고추장(고춧가루)으로 양념을 하지 않았고 감자가 없을 뿐 지금의 닭도리탕과 거의 일치한다. 사용한 양념을 훈(훈)이라고 했으니 자극성이 강한 파, 마늘을 쓴 모양이다.

1924년에 초판이 발행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도리탕이 보인다. ‘닭볶음(鷄炒)’을 설명하며 “송도(松都)에서는 도리탕이라고 하고 양념으로 파와 후춧가루, 기름과 깨소금, 마늘 등을 넣고 만든다”고 했다. 해동죽지에서는 도리탕을 평양의 특산물이라고 했으니 개성 북쪽인 관서(關西)지방 음식으로 보인다.

닭볶음인 도리탕은 일제강점기 때 발달한 음식이고 일본인이 닭을 발음할 수 없어 일본말로 도리탕이라고 했다는 것이 왜색 용어라는 주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해동죽지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최영년(崔永年)이 우리나라 민속놀이와 명절풍습, 명물음식 등을 기록한 책이다. 한문으로 쓰였지만 필요한 경우 한글로 토를 달았다. 때문에 도리가 일본말이라면 새 조(鳥)라는 한자를 놔두고 일본어 발음인 ‘토리(とり)’를 다시 한자인 ‘도리(桃李)’로 음역했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도리탕도 마찬가지다. 송도 사람들만 굳이 닭볶음을 일본말을 섞어 도리탕이라고 부른다고 해석해야 할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닭도리탕의 도리는 새의 일본어 발음이 아니라 ‘아랫도리’의 도리처럼 우리말일 수도 있고 한자어일 수도 있다.

게다가 대체어로 제시하는 닭볶음탕이란 이름은 이 음식에 어울리지 않는다. 국물이 없는 볶음과 국물이 있는 탕은 엄연히 다른 음식이다. 닭볶음탕이라고 하면 ‘국물이 없으면서 국물이 있는 국’이라는 특이한 음식이 된다. 국어학계의 연구를 거쳐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에서 비롯된 말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면 ‘짜장면’처럼 복권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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