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법원 “檢, 한만호 9억 ‘한명숙에 전달됐다’ 증명 못해”

입력 | 2011-11-01 03:00:00

■ 한 前총리에 무죄 선고




3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형사 510호 법정. 재판장인 김우진 부장판사(법대 가운데 앉은 판사)가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네받은 혐의로 기소돼 불구속 재판을 받아온 한명숙 전 국무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에게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다. 판결 순간 다소 긴장된 표정의 한 전 총리를 변호인인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법정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돼있기 때문에 동아일보 최남진 화백이 이날 공판 장면을 스케치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9억여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핵심 근거는 검찰이 자금 공여자로 지목한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진술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검찰에서는 “한 전 총리에게 9억여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는 “준 적이 없다”고 말을 뒤집는 등 진술의 일관성이 없고 여러 객관적 상황과도 맞지 않는 점이 많아 유죄의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이 전달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9억여 원 존재’ 등 검찰이 유죄의 증거나 정황으로 제출한 여러 사실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림에 따라 앞으로 열릴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과 한 전 총리 간 법정 공방의 쟁점이 될 여지를 남겼다.



검찰이 지난해 4월 한 전 총리의 9억여 원 수수 혐의 사건 수사에 착수하게 된 것은 한만호 전 대표가 2007년 한 전 총리에게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수표, 달러 등을 합쳐 9억여 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데 따른 것이다. 따라서 재판에서 한 전 총리의 유·무죄를 가리는 핵심 쟁점은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했던 자금 공여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모아졌다.

이날 재판부는 한 전 대표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한 전 대표가 지난해 검찰 조사를 받을 때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가 지난해 12월 열린 재판에서는 “검찰에서 거짓말을 했다”며 검찰 진술을 정반대로 뒤집었다는 점을 들어 기본적으로 진술의 일관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 전 대표가 법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고 검찰 진술을 뒤집은 법정증언도 인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검찰에서 했던 자금 공여 진술 역시 믿을 수 없다고 못 박은 것이다.

재판부는 일반적인 불법 정치자금의 수수 행태에 비춰볼 때 한 전 총리의 자택이나 자택 주변 도로에서 돈을 건넸다는 한 전 대표의 진술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평균 30초당 1대씩 차량이 지나다니는 도로에서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기 위해 차량 안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피고인이 편안하다고 느끼기 어렵다”고 했다. 또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자가 억대의 정치자금을 재정담당자나 믿을 만한 보좌직원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받는 것이 흔한 경우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이 그의 사업상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진 정황이 있다고 재판부가 본 것도 한 전 대표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 전 대표가 검찰에서 진술할 당시 한 전 총리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고 정치적 폭로를 이용해 사업상 이익을 얻으려 도모한 듯한 모습이 엿보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한 전 대표가 발행한 1억 원 상당의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자금으로 사용된 사실에 대해서도 “1억 원 수표를 한 전 총리의 동생이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이 수표가 한 전 총리에게서 그 동생에게 전달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 의심스러운 9억 원의 존재 인정

재판부가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한 전 총리가 한 전 대표가 조성한 9억여 원과 관계가 전혀 없다고 판단한 결과라기보다는 9억여 원이 한 전 총리에게 확실히 전달됐다는 검찰의 입증이 부족했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

한신건영에서 9억여 원이 조성됐고 한 전 대표가 한 전 총리의 측근인 김문숙 씨에게서 2억 원을 돌려받은 사실 등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에 비춰보면 9억여 원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의심되긴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