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 부산팬들이 힘… 서로의 氣받아 꼭 우승 하입시더”
“전 감독, 나한테 기 좀 줘” “선배님 우승하시면 제가 그 기 받아야죠.” 프로야구 롯데 양승호 감독(왼쪽)과 프로농구 KT 전창진 감독은 모처럼 자리를 함께했어도 서로의 근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부산 연고 프로팀의 동반 우승을 위해 의기투합한 두 감독이 선전을 다짐하며 활짝 웃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 나는 양 감독 팬이다
양승호 감독(이하 양)=허허. 전 감독. 오랜만이야. 같이 부산 팀을 맡았어도 종목이 다르니까 만나기 쉽지 않네.
광고 로드중
양=그럴 수도 있지. 팀이 만날 이기는 것도 아니고…. 그런 부담 갖지 말고 시간 날 때 언제든 연락하고 야구 보러 와.
전=롯데를 맡으신 이후 선배님을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선수들과 미팅하면서 소통을 강조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시던데…. 롯데가 확실히 달라지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시즌 초반 어려운 시기를 겪고도 중반 이후 치고 올라갈 때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 뚝심 아무나 발휘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 나는 전 감독 팬이다
양=무슨 소리야. 전 감독이 프로농구 명장이라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꼴찌 팀을 맡자마자 지난해 정규시즌 2위, 올해에는 우승까지 했잖아. 전 감독이 지도자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데는 프런트 생활을 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아.
광고 로드중
양=나도 프런트 생활을 해봐서 알지. 아무리 감독이 팀을 대표한다고 해도 무리한 요구를 하면 구단과 선수단 모두에 득이 될 게 없어. 그러고 보면 전 감독은 선수들을 장악하는 데도 탁월한 것 같아.
전=코트에서는 엄하게 해도 일과 후에는 간섭을 안 해요. 코치들에게 동선 보고만 하면 되죠. 모두 성인인데 술도 알아서 먹는 거죠. 저한테 걸리지만 않으면 돼요. 하하. 고민이 있는 선수들은 따로 만나 상담도 많이 해요.
양=맞아. 전 감독 말처럼 선수와 눈높이를 맞추는 게 중요하더라고. 승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모두 감독 책임이야. 선수들은 경기를 할 때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되는 거지.
○ 우리는 부산의 감독이다
양=부산 팬들의 롯데에 대한 애정은 정말 대단해. 택시를 타도 기사분이 ‘우리 감독님’ 하거든. 초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어떡하나. 그게 롯데 감독의 운명인걸.
광고 로드중
양=구단과의 관계는 감독이 잘 정립해야 돼. 시즌 초반 구단에 감독직을 걸고 요청한 사항이 있어. 해결이 안 되면 짐 싸서 올라가겠다고 했지. 다행히 구단에서 내 얘기를 들어줬고 그 뒤로는 그런 일이 없었지. 그나저나 시에서는 KT 농구단을 잘 지원해 주나?
전=그게 많이 아쉬워요. 부산 시민들을 위한 프로구단인데 시에서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경기장 전광판을 바꾸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스포츠에 대한 시민들의 열기는 뜨겁지만 부산 연고 프로 팀들은 2000년대 들어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프로농구 원년인 1997년 기아가 우승한 게 마지막이다. 롯데는 1992년 우승을 마지막으로 20년째 무관이다. KT도 챔피언결정전 우승 경험이 없다.
양=지난 시즌 KT가 정규시즌에서 우승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해 안타까웠어. 이번에는 꼭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우승해야지?
전=아닙니다. 선배님이 먼저죠. 일단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뒤 한국시리즈에서 꼭 우승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그 기(氣)를 저한테 꼭 나눠 주셔야 돼요.
(후기) 부산을 대표하는 두 사령탑의 만남 이후 전 감독은 지난달 30일 롯데와 두산의 경기가 열린 사직구장을 찾았다. 징크스(?) 탓에 선배에게 말도 못하고 야구장에 간 전 감독은 롯데가 이기자 함박웃음을 지었다. 롯데는 이날 승리로 플레이오프 직행의 8분 능선을 넘었다. 앞으로 사직구장에서는 전 감독을, 사직체육관에서는 양 감독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것 같다.
▼ 高大 선후배… 프런트 경험… 기러기 아빠… ‘닮은 꼴’ 두 감독 ▼
서울 토박이에 대학 동문이라는 점 말고도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촉망받는 유망주였지만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접었다. 각자의 종목을 떠나지 못해 한동안 프런트로 일했던 것도, 대인 관계가 원만한 것도 꼭 닮았다. 양 감독의 가족은 서울에, 전 감독의 가족은 캐나다에 있기에 ‘기러기 아빠’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프로 지도자로서는 후배가 먼저 꽃을 피웠다. 2001∼2002시즌 도중 동부의 전신인 삼보 감독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은 전 감독은 대행을 뗀 2002∼2003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하며 프로농구에 자신의 시대를 예고했다. 정규시즌 우승 4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를 달성하며 역대 최다인 감독상을 5차례나 받았다.
양 감독은 2006년 시즌 중반부터 LG 감독대행을 하다 이듬해 모교인 고려대 사령탑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해 프로야구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후임으로 롯데를 지휘하게 됐다. 시즌 초반 롯데가 꼴찌로 추락하자 성난 팬들로부터 청문회 요청까지 받았던 그는 후반기에 팀을 잘 추슬러 2위로 올려놨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이 순위를 지킨다면 그는 12년 만에 롯데를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감독이 된다.
양 감독은 후배에게 “더 큰 별이 돼서 장수하라”는 덕담을 건넸다. 전 감독은 “롯데를 20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는 감독이 되시라”고 화답했다.
1997년 이후 우승한 프로 팀이 없는 ‘구도(球都)’ 부산에서 여러 모로 닮은 두 감독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부산=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양승호-전창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