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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방형남]남북가스관 추진 전 MB가 답할 일

입력 | 2011-09-30 20:00:00


방형남 논설위원

북한에 가스관을 매설해 이를 통해 러시아 천연가스를 국내에 들여오는 PNG(파이프천연가스) 구상이 점점 틀을 잡아가고 있다. 북한의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스관 사업은 남-북-러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며 “조선반도와 동북아 평화, 남북관계 개선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의 움직임은 훨씬 구체적이다. 나흘 전 서울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는 “가스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 동해안을 거쳐 수도권∼의정부∼개성∼평양으로 연결되는 J자형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안까지 나왔다.

대북 원칙, 3년 반 만에 포기하는가

PNG 구상은 이명박 대통령의 집념 때문에 더욱 무게를 갖는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회장 시절인 1989년과 1990년 시베리아 동토를 누비며 천연가스 도입 사업을 추진했으나 옛 소련의 붕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천연가스 도입을 포함한 시베리아 자원 개발에 대해 ‘일시적으로 제동이 걸려 있는 상태’라고 표현했다(자서전 ‘신화는 없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 시절 못다 이룬 자원 확보의 염원에다 남북관계의 경색을 풀기 위한 반전(反轉) 카드의 의미를 더해 PNG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상생하고 평화공존을 거쳐 통일로 가는 데 도움이 되는 사업이라면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굳어 있는 남북관계 상황에서 튀어나온 PNG 구상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이 많다. 이 대통령의 가스관 사업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려면 최소한 다음의 의구심에 대한 대답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첫째는 MB 정부 대북(對北) 원칙과의 충돌이다. 한나라당을 포함한 보수 진영이 그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퍼주기’라고 공격한 논지의 핵심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간 현금이 김정일 정권의 핵과 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2009년 7월 외국 언론 인터뷰에서 “과거 정부가 10년간 막대한 돈을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핵무장을 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러 가스관이 완성되면 북한에 매년 막대한 현금이 들어간다. 권원순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북한을 지나는 가스관의 길이를 740km로 잡아 통과료를 연간 1억1840만 달러(약 1300억 원)로 추정했다. 이 대통령이 대규모 남북 경협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에 요구한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도 아직 나올 기미가 없다. 그렇다면 ‘가스관 원조’는 MB 정부 대북정책의 출발점인 ‘비핵 개방 3000’에도 배치된다.

결국 김 정권 연장에 기여할 것인가

둘째, 북한 독재정권 지원에 대한 우려다. 1990년대 초 북한이 옛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으로 위기에 몰렸을 때 노태우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비핵화 합의로 김일성의 근심을 덜어줬다. 김정일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덕분에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시기를 넘기고 핵실험을 두 차례나 했다. 지금 북한 정권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독재정권이 잇따라 무너지는 것을 보며 떨고 있다. 북한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PNG 사업은 김정일 정권의 연명을 위한 재정 지원 창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참담한 실패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북한 신포에는 15억6200만 달러를 퍼부었으나 공사 중단으로 폐허가 된 경수로가 남아있다. 남-북-미 합의를 헌신짝처럼 내던진 북한 때문에 11억3700만 달러의 우리 국민 세금이 날아갔다. 권 교수는 남북한을 연결하는 가스관 건설비용을 22억 달러로 추정했다. PNG가 경수로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더구나 남한에 대한 김정일 집단의 악의(惡意)가 가스관을 어떻게 악용할지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는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