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 믿지는 않아도 종교의 가치 새로 깨달아”
스위스 출신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42)이 에세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청미래) 출간에 맞춰 처음 한국을 찾았다. 국내에서 35만 부 이상 판매된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비롯해 에세이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등을 통해 독특한 지적 유희를 펼쳐온 그가 이번엔 종교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27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보통은 “한국에 제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았는데 이제야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신경숙 씨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어요. 작품 자체도 사랑스러웠지만 책을 통해 한국 사회를 알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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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평소 무신론자라고 밝혀 왔다. 한때는 종교를 굉장히 사악하고 타락한 존재로 여기며, 지성인이라면 종교에는 단 1분의 시간도 할애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서구사회의 과격한 무신론주의에 동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간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는 기존 종교가 가진 가치와 미덕을 존중하는 내용이다. 그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종교가 가진 가치는 여전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보통은 기독교와 유대교, 불교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유대인이지만 엄격한 무신론자 집안에서 자라 유대교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었기에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 기독교는 ‘유대교의 적’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했고 불교는 건축양식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다.
“종교가 신도를 교육하는 방식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세속 사회는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데 주력하죠. 하지만 종교는 인간이 잊어버리는 존재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끊임없이 반복학습을 시킵니다. 또 새것이 항상 좋다고 여기는 세속과 달리 종교는 옛 생각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태도 역시 현대의 세속 사회가 배워야 할 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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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국가 간 교류가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엔 무역에 그쳤다면 이젠 창조적 아이디어의 교류가 중요합니다. 제가 컴퓨터나 자동차가 아닌 책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하게 돼 기분이 좋습니다. 저 또한 한국에서 한국인과 만나며 많은 걸 받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알랭 드 보통은…::
△ 1969년 스위스 취리히 출생 △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수학 △ 1993년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데뷔 △ 2003년 2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 받음. 11월 ‘샤를 베이용 유럽 에세이 상’ 수상 △ 저서: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여행의 기술’ ‘불안’ ‘행복의 건축’ ‘공항에서 일주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