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유동성 확보 차선책… 두달간 16억달러 규모 조달
세계 최고 수준의 외환보유액,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아시아 지역에서 채권을 발행하면 달러 채권을 발행할 때보다 조달금리를 상당히 낮출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23일 주요 은행 자금담당 본부장을 불러 모아 “발행 금리가 이전보다 조금 높아졌다는 부담이 있지만 장기채권을 발행해 선제적으로 달러를 확보할 것”을 지시하면서 은행권의 아시아채권 발행 열기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올해 말-내년 초에도 발행 계획
주요 은행들은 9월 한 달간 아시아 채권시장에서 8억 달러(약 9520억 원)가 넘는 돈을 조달했다. 하나은행은 30일 시중은행 최초로 태국 밧화채권 2억6000만 달러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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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도 9월과 비슷한 규모의 채권 발행이 기다리고 있다. 산업은행은 다음 달 초 사무라이채권 500억 엔, 농협도 10월 중 링깃채권을 최대 2억 달러 정도 발행할 예정이다. 최근 두 달간 발행된 아시아채권 규모만 16억6200만 달러에 이른다. 우리은행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2억 달러 정도의 사무라이채권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언제든 아시아채권 발행에 나설 수 있는 은행도 많다. 신한은행은 4월 태국 정부로부터 밧채권 발행 허가를 얻었고, 링깃 MTN(Medium Term Note) 프로그램도 보유하고 있다. MTN은 채권 발행 한도와 기간을 사전에 정해두고 그 범위 안에서 채권을 수시로 발행할 수 있다.
○ 조달금리 0.1∼0.2%가 낮아
은행들이 앞다퉈 아시아채권 발행에 나서는 이유는 낮은 조달금리 때문이다. 한 은행의 자금담당 부장은 “5년 만기 사무라이채권 5억 달러를 발행한다고 가정하면 채권 발행 후 엔화를 달러로 바꾸는 스와프 수수료를 감안해도 달러 채권을 발행할 때보다 조달금리가 0.1∼0.2%가 낮다”고 설명했다.
‘커미티드 라인(Committed Line)’의 실효성 논란도 채권 발행을 부추긴다. 8월 초 미국 신용등급 강등 직후 은행들은 외국 은행에 일정 수수료를 주고 비상시에 달러 공급을 약속받는 커미티드라인을 구축해 외화 유동성을 확보했다. 8월 이후 현재까지 주요 은행들이 구축한 커미티드라인만 25억 달러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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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은행 자금담당 부행장은 “국내 은행의 커미티드라인 계약서에는 대부분 ‘중대하고 급격한 시장변화(market disruption)가 발생했을 때 자금 사용 권한이 유효하지 않다’는 조항이 있다”고 전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처럼 리보(런던은행 간 금리) 호가도 나오지 않는 비상사태 때는 돈을 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그는 “국내 은행들이 짧은 시간 내에 지나치게 많은 커미티드 라인을 구축하다 보니 수수료 부담이 커졌다”며 “채권 발행을 통해 외화를 바로 조달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설명했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로 ‘선진국 채권은 안전하고, 신흥국 채권은 위험하다’는 통념도 바뀌고 있다. 최근 미래에셋증권은 이번 글로벌 재정위기가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와 비교해 가장 다른 점은 아시아채권이 안전자산으로 부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