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꽃 같은 청춘은 지난 나이”라고 말한 전도연은 “결혼해 아이가 생기고 다른 부담이 늘수록 배우라는 직업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촬영하는 매 순간을 즐기려고 한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번에 맡은 역할은 전신 성형한 외모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을 등치는 미모의 사기꾼. 그에게 간 이식을 받으려는 남자(정재영)를 애태우게 하는, ‘별주부전’의 얄미운 토끼 같은 역이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카멜레온처럼 화려한 여자이지만 알고 보면 17세에 아이를 낳고 버린 기억에 가슴 아파하는 여린 여자”라고 배역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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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에 귀여운 코맹맹이 목소리를 가진, 순진해 보이는 그에게 어떤 마성(魔性)이 깃들어 있는 걸까. “원래 악인이란 없어요. 모든 역할에는 진정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악역이지만 관객이 연민을 느끼도록 해야 진정한 연기죠.” 말할 때 살짝살짝 비뚤어지는 입술 모양에선 얼핏 야비함마저 느껴졌다.
감성을 자극하는 연기가 돋보이는 그녀. 하지만 이번에는 화려한 몸치장이 눈길을 끈다. “영화를 본 분들이 ‘전도연 예뻐졌다’고 해요. 사실 저는 몸치장 오래 하는 게 편하지는 않아요. ‘내 마음의 풍금’에서처럼 ‘몸뻬’ 입고 나오는 게 더 편해요.”
외모로 승부하는 배우는 아니지 않으냐고 물었다. “배우로서 외모에 충분히 만족해요. 오똑한 코, 큰 눈 등 데뷔 당시 여배우로서의 전형적인 조건에는 맞지 않았지만 스스로 예쁘다고 봤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죠.”
2007년 ‘밀양’으로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탄 이후로 자신감이 배가된 걸까. “칸 이후로 시나리오가 한 편도 안 들어와서 깜짝 놀랐어요. 시나리오가 없어서 매니저에게 진짜인지 확인해본 적도 있어요. ‘전도연이 이런 역을 할까’라고 주변에서 더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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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압감을 이겨내고 영화 촬영 자체를 즐기는 것이 그에게 가장 중요해졌다. “부담 없이 연기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려면 현장에서 스스로를 너무 채찍질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생각을 비웠죠.”
칸의 여왕에게 또 다른 부담은 흥행성적. 1997년 ‘접속’으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10편 넘는 작품에 출연했지만 대박 난 영화는 없다. “그동안 흥행을 생각해 영화를 고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가볍게 즐기는 영화예요. 관객 300만은 들었으면 해요. 헝헝헝.”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