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1일 곽노현 교육감을 구속 기소하면서 서울시교육감 선거 후보단일화 과정의 뒷돈거래 의혹에 관해 지난 44일간 조사해온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이 밝힌 사건의 전모는 △곽 교육감이 처음부터 후보 사퇴를 전제로 돈과 자리를 제공하기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와 합의했고 △이를 바탕으로 양측 실무자가 금전적 지원액수 등을 놓고 협상을 벌이다가 두 후보에게 보고해 최종 합의했으며 △이후 진보진영 후보단일화 효과로 당선된 곽 교육감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자 박 교수 측이 작년 8~10월 지속적으로 이행을 요구했고 △결국 올해 2~4월 양측이 합의한 7억원중 2억원만 박 교수에게 전달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곽 교육감 측은 "이른바 이면합의는 권한이 없는 양측 실무자가 구두로 합의한 것에 불과하고 이면협상이 있고 다섯 달이 흐른 작년 10월에야 합의의 존재를 알았다"며 수사결과를 반박하고 있다. 박 교수의 딱한 사정을 알고 선의로 2억원을 줬을 뿐 후보 사퇴의 대가는 아니었다는 기존 주장 역시 굽히지 않고 있다.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은
지난해 4월14일 진보 시민단체로 구성된 민주·진보 서울시교육감 시민추대위는 곽 교육감을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박명기 후보는 단일후보 선출방식에 불만을 표출하고 참가하지 않았다.
이후 방송 3사 여론조사에서 보수 진영 이원희 후보 7%, 곽노현 후보 6.7%, 김영숙 후보(보수) 5.9%, 박명기 후보 5.3%로 지지율이 나와 진보 후보의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에 이르자 두 후보는 단일화 협상에 들어갔다.
곽 교육감과 박 교수 측은 작년 5월17일 후보 단일화를 위한 사전협상을 벌여 단일화 필요성에는 공감했으나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합의에 실패했다.
1차 협상 결과를 바탕으로 양측 실무진은 그날 오후 2차 협상에 들어가 박명기 교수가 선거비용으로 지출한 7억원을 곽 교육감이 보전해주기로 잠정합의했으나 박 교수 측 유세차량 처리문제로 이견을 보여 협상이 결렬됐다.
5월19일 오후 2시 다시 만난 양측 실무진은 박 교수의 선거비용 보전 명목으로 곽 교육감이 7억원을 제공하고 박 교수가 정책자문기구 위원장직을 맡는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협상 조건은 박 교수가 긴급하게 처리해야 할 1억5000만원은 일주일 내에, 나머지는 8월말까지 지급하는 것이었다.
협상 타결 직후 양측 실무진은 곽 교육감과 박 교수에게 각각 합의사실을 직접 보고한 다음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곽 교육감 측의 주장은 여전히 수사발표와는 평행선을 달린다. 우선 곽 교육감은 작년 5월19일 양측 실무진의 합의사실을 그해 10월에야 알고 깜짝 놀랐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곽 교육감 측 선거대책본부 인사들은 지난 1일 흥사단기자회견에서 "박 교수 측의 10억원 요구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주장한 바있다.
검찰은 수사발표에서 '각각 합의사실을 직접 보고한 후 최종 합의'했다고 적시했지만 근거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재판과정에서는 곽 교육감이 당시 합의사실을 직후에 알았느냐, 몰랐느냐가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교수의 합의이행 요구
곽 교육감이 약속과 달리 합의내용을 이행하지 않자 박 교수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측근인 양모 씨를 통해 곽 교육감의 측근에게 합의이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계속 약속한 돈을 주지 않자 박 교수는 그해 8월20일 직접 교육감실로 찾아가 이행을 요구했고 곽 교육감은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경제적 지원과 정책연대를 약속한 사실을 인정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제자인 김모씨를 통해 수회에 걸쳐 곽 교육감측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이후 곽 교육감과 박 교수는 지난해 11월 최모 교수의 주선으로 만나 합의 이행 요구 등을 협의했다. 이어 곽 교육감이 그해 11~12월 측근인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교수 등 수차례 만나 이행 금액과 시기 등을 협의했다. 이때 곽 교육감 측은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선거일 이후 6개월로 잘못 알고 이를 의식해 금전 지급을 지연했다.
이어 강 교수가 올해 1월17일 박 교수를 만나 7억원 중 2억원을 주겠다고 제의하자 박 교수가 일단 2억원을 받기로 수락했다.
곽 교육감은 지난 9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읽은 최후진술문에서 "작년 11월28일자 저녁회동은 형제애의 확인 자리였다. 강경선 교수의 지혜로운 노력으로 박 교수의 오해와 원망이 풀리고, 원칙이 충족됐다고 판단해 긴급부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합의이행 등을 협의한 자리였다고 밝힌 곽 교육감과 박 교수, 최모 교수의 만남을 곽 교육감은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역시 이 자리의 성격을 놓고도 재판에서는 공방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2억원 전달 과정
곽 교육감은 지인에게서 현금 1억원을 빌리고 아내와 둘째 처형에게서 각각 5000만원을 받아 박 교수에게 줄 2억원을 마련했다.
둘째 처형에게 빌린 5000만원은 부산에서 처조카 유모씨가 직접 현금을 지니고 비행기 편으로 공수해왔다. 곽 교육감은 이렇게 마련한 2억원을 올해 2월19일부터 4월8일까지 6차례에 걸쳐 곽 교육감의 첫째 처형, 강경선 교수, 박 교수 동생을 거쳐 박 교수에게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강 교수와 박 교수 동생은 채권자가 강 교수이고 채무자가 박씨인 차용증 12장과 채권자가 박씨이고 채무자가 강씨인 차용증 12장을 작성한 것으로 조사결과 드러났다.
검찰 관계자는 "한쪽이 차용증으로 돈을 청구할 경우에 대비해 채권자와 채무자를 바꿔 쓴 차용증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곽 교육감은 또 3월17일 서울교육청 정책자문위원회 설치·운영 조례를 공포하고 6월 박 교수를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이후 박 교수는 6월17일 열린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에서 곽 교육감의 상임 공동 선대본부장이었던 박모 위원의 추천으로 부위원장 후보로 나가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곽 교육감은 이에 대해 "선의라고 할지라도 사회적으로 물의가 빚어지고 교육감직에 누가 될 것을 우려해 남몰래 진행한 일이 있다"며 여러 단계를 거쳐 돈을 전달한 경위를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다.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