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의 公先私後<공선사후>-타협적 통합주의는 현재진행형 교훈”…인촌기념회-동아일보-고려대 주최
일제강점기 민족혼을 일깨우고 광복 후에는 나라의 초석을 닦는 데 헌신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20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발표자와 종합토론자로 나선 학자들은 건국 교육 산업 언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인촌 선생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공헌을 조명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 종합토론회서 나온 인촌 행적과 면모
“인촌이 중앙학교, 보성전문과 경성방직을 인수해 발전시킨 활동은 교육과 산업으로 국권 회복을 모색하는 노선이었다.”(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
“간디가 인촌의 편지에 보내온 답장은 항일보다 ‘조선인다운 혼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인촌은 민족독립을 위한 민족문화 되찾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다.”(백완기 학술원 회원)
최정호 교수는 “인촌의 동아일보는 창간 취지가 민족계몽이었다. 한국에서 언론이 ‘무관의 제왕’ ‘사회의 목탁’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의 업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중순 총장은 “야당의 뿌리도 인촌에서 시작하는 등 인촌의 유산이 많다. 독립투쟁과 건국 과정에서 인촌의 역할은 영향력이 지속적인 만큼 부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이사장은 “광복 직후 인촌과 동아일보의 반탁과 단독정부 수립 지지에 대해 일부에서 ‘반통일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지만 1990년대 공개된 옛 소련 문서를 통해 당시 판단은 정확했음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정영수 교수는 “동아일보가 브나로드 운동을 시행하고 맞춤법 연구를 지원한 것은 대한민국의 사회 교육과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주익종 연구원은 “임정에서 활동한 김구 선생의 행적에 우리가 감동하듯,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민족의 힘을 키운 인촌의 실력양성운동에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옥순 인도문화연구소장은 “동아일보가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은 바로 일제를 비판한 독립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이종은 국민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현승종 인촌기념회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인촌의 리더십과 비전, 포용력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어떤 스승이 절실한가를 짚어볼 수 있는 자리”라고 세미나의 의의를 밝혔다. 한승주 국제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축사에서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신념으로 늘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며 낮은 자세로 임했던 인촌은 ‘과거완료’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했다.
주제 ① 인촌과 대한민국의 건국
진덕규 이화학술원장
진 원장은 인촌의 실천 양식을 ‘전통적 문화주의’, ‘계몽적 실천주의’, ‘타협적 통합주의’로 정의하며 “인촌은 그의 실천 양식을 바탕으로 민족적 민주주의를 선택해 한국민주당의 정강 정책은 물론이고 실제의 정치활동에서도 그대로 표출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인촌의 타협적 통합주의는 자신의 주관이나 일방적인 의지의 관철이 아닌, 협의와 토론의 과정을 통해 모두에 의한 최선의 모색을 추구하는 행위원칙이었다고 강조했다.
주제 ② 교육적 인간상으로서 인촌
한용진 고려대 교수
한 교수는 교육적 인간상에 ‘인덕(仁德)의 대인으로서의 교육자’ ‘공(公)과 신의(信義)를 중심으로 한 좌우명’ ‘역사적 의식인으로서 입지(立志)의 선비’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그는 인물로서의 인촌을 표현한 ‘민족의 거성’ ‘위인’ ‘영웅’ 등의 여러 표현 등을 종합해 보면 인촌에게서 볼 수 있는 면모는 바로 사람들을 포용하는 ‘큰 그릇(大器·대기)’이자 ‘어른’의 풍모였다고 밝혔다. 앞에 나서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대인이었다는 것. 한 교수는 “‘맹자’에서 대인이란 ‘자기 몸을 바르게 함에 남이 바르게 되는 자를 이른다’고 했다”며 “교육자로서의 인촌이 이에 해당한다. 보수와 진보로 편 가르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요구되는 인간상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주제 ③ 경성방직의 경제사적 의의
이영훈 서울대 교수
일찍이 경성방직은 최초의 근대적 대기업으로 민족기업이라는 연구가 나온 바 있지만 1980년대를 지나며 민중·민족주의 관점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해석하는 흐름이 커지면서 이런 관점의 연구가 계승되거나 평가받지 못했다.
이 교수는 최근에 와서야 식민지 시기 기업가의 활동을 재평가하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며 주익종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원의 저서 ‘대군의 척후’를 인용했다. 대군의 척후란 대한민국 성립 이후 생긴 기업 대군의 맨 앞에 서서 그들이 갈 길을 제시한 선구적 존재였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주 연구원이 책에서 사용한 표현을 인용해 경성방직과 김성수 형제가 20세기 한국 경제와 기업의 역사에서 ‘뛰어난 학습자’였으며 ‘성공적인 후발자’였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발전을 만든 ‘사회적 능력’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기업가 능력’을 독립운동 중심의 정치사에서 해방시켜 올바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 ④ 인촌과 한국 언론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일제강점기 국내 항일운동의 중심기관은 언론이었다. 정 교수는 “언론은 항일 논조를 펼치면서 민족의식을 잃지 않도록 글로써 깨우치고 새로운 사상을 도입하는 창구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
당시 신문사는 인재의 집결처이기도 했다. 인촌은 언론인과 문인들을 신문사라는 당대의 첨단 조직에 포용해 민족 언론이 기능을 발휘하도록 했으며, 광복 후에는 이들이 정계 학계 문화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고 정 교수는 평가했다.
정 교수는 동아일보가 1963년 동아방송을 개국해 신문과 방송으로 보도와 비판 기능을 강화했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방되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을 상기하며 “이제 동아일보가 디지털 뉴미디어 시대의 종합편성방송인 ‘채널A’를 준비 중이므로 인촌의 유지를 되살려 방송 언론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