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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릭 세계은행 총재 “유로존 위기, 신흥국 전염 시작됐다”

입력 | 2011-09-21 03:00:00

미-유럽계 자금 빠져나가고 서방 수출길 막혀 위기 전이…
“한국도 외환자금 50% 넘게 유럽계 은행서 조달”




미국과 유럽이라는 두 선진 경제권을 괴롭히고 있는 경제위기가 신흥국으로 급속히 퍼져갈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위기의 전이 경로는 신흥국이 수출 부진을 겪고 미국과 유럽계 달러 자금이 신흥국으로부터 이탈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IBRD) 총재는 22일부터 주말까지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IBRD 연차총회를 앞두고 19일 가진 전화 기자회견에서 “8월 상황은 (유로 위기가) 신흥국으로 이미 전이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16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는 “신흥국이 유로 사태 추이에 따라 국제 수요와 신뢰가 심각하게 둔화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지금이 매우 민감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유로 위기 충격으로 신흥국의 성장이 급격히 둔화하면 신흥국도 부실 채권 문제에 직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흥국의 주요 수출시장이던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급격히 둔화되면서 신흥국의 성장엔진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 아시아개발은행(ADB)은 14일 아시아 45개 개발도상국의 올 경제성장률을 4월 전망치(7.8%)보다 0.3%포인트 낮추면서 “미국과 유럽의 경기불황 여파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위협 요인은 뱅크런(자금 인출)으로 인해 유동성 부족을 겪는 유럽 은행들이 해외에 빌려주거나 투자한 자금을 대거 빼가면서 신흥국의 외환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실제 독일의 대표적 기업 지멘스는 2주 전 50억 유로(7조8000억 원)가량의 자금을 프랑스 대형은행에서 인출했다고 FT가 19일 보도했다. 로이터도 중국 국영은행인 중국은행이 유럽 주요 은행들과의 외환 스왑거래를 중단하는 등 유럽 은행과의 거래를 중단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유럽 은행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유럽중앙은행(ECB)에 손을 벌리든지 기존에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는 방법밖에 없다.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전 대통령국제경제보좌관)도 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글로벌금융리더 포럼에서 발표할 기조 연설문을 통해 “유럽 은행의 디레버리지(대출회수)는 신흥시장의 자금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6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서도 “유럽은행이 자금회수에 나서면 달러가치가 급등할 것”이라며 “한국도 자금조달의 50% 이상을 유럽계 은행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외환시장에서 외국인의 자금 이탈이 지속되면서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연일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주에 이어지는 G20회의와 IMF·IBRD 연례총회에서는 이번 경제위기가 선진국만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고 선진·신흥 경제권에 위기 타개를 위한 각자의 역할을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로이터에 게재한 칼럼에서 “G20 회담에서 더 확실한 유로 위기 타개책이 나오지 못하면 전 세계가 실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