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문화부장
이름과 실체가 다른 나라는 우리 가까이에도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옛 조선왕국의 북부를 지배할 뿐 인민이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며 민주주의로 부를 정치과정도 갖지 못했다. 3대째 세습통치 과정을 밟는 그곳의 정체(政體)는 공화정보다 왕정에 가깝다. 요즘 젊은이들의 어법을 빌리면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 쓰고 독재 왕국이라고 읽어야” 할 판이다.
언어에는 마음이 없지만 이처럼 언어를 이용하는 인간은 바른 마음을 잃기 쉽다. 그러므로 특정 개념이 오용되고 오염되었을 경우 한층 엄밀한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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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런가. 인터넷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위키피디아’를 찾아보았다. 누리꾼 누구나 내용을 만들고 바꿀 수 있는 텍스트이니 오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처럼 보편적인 개념에서 세계 누리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의도적인 왜곡을 범하기란 힘들 것이다.
‘민주주의(Democracy)’ 항목을 보니 첫 페이지에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민주주의’의 정의란 없다”고 전제한 뒤 “많은 사람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의 줄임말로 사용하며, 이는 정치적 다원주의, 법 앞의 평등, 적법한 절차, 인권 등을 나타낸다”고 적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항목은 더욱 명확하다. 첫 두 문장은 다음과 같다. “자유민주주의는 입헌(Constitutional)민주주의로도 알려져 있으며 대의민주주의의 일반적인 형태다.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따르면 선거는 자유롭고 공정해야 하며, 정치과정은 경쟁적(Competitive)이어야 한다.”
세목으로 들어가 ‘세계의 자유민주국가’ 항목을 본다. 자유민주국가로 유럽연합 국가들과 그 외 미국, 일본, 한국, 브라질, 인도 등 17개국만을 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사회민주주의까지 포괄하는 개념인 점도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용어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인민민주주의나 다른 체제를 용인하려는 것이 아니니까”라면 좋다. 일상어에서는 ‘민주주의’만으로 그 뜻에 근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고시안은 교과서에 담을 내용을 규정할 헌법과 같다. ‘민주주의’로 쓰고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개념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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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