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민투표가 어제 투표율 25.7%로 투표 성립에 필요한 33.3%를 넘지 못해 개표도 못한 채 끝났다. 이 투표율은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오세훈 서울시장의 득표율 25.4%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다. 오 시장이 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어 어느 정도 투표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겠지만 야당의 투표 참여 거부 전략으로 한계를 보여줬다.
오 시장 역시 전략적이지 못했고, 한나라당에서 공감대를 넓히지 못해 내부 동력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연계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고, 주민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임기를 채우지 못하게 된 것은 유감이다. 다만 그가 복지 포퓰리즘과의 싸움을 벌인 대의(大義)가 국민 속에 부각돼 훗날을 기약할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이번 주민투표는 어디까지나 서울시 초중고교생의 무상급식에 관한 정책선택을 위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모든 무상 시리즈에 관해서 국민의 OK를 받은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번 투표에 참여했든 안 했든 어떤 국민도 복지지출을 무작정 늘려 그리스처럼 국가부도에 몰리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야가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자극받아 경쟁적으로 무상복지 정책을 쏟아낼 경우 ‘국가적 재앙’이 벌어질 우려가 크다. 세금으로 걷는 돈보다 정부가 쓰는 돈이 더 많아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과 미국, 일본을 뻔히 보면서도 ‘길이 아닌 길’을 따라갈 순 없다. 저출산 고령사회를 앞두고 투표권 없는 미래 세대에 빚더미를 물려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 시장의 퇴진 이후 한나라당이 서울시를 지킬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복지 포퓰리즘과의 일대 결전을 치르면서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졌던 한나라당에 대한 분노와 무관심이 주민투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 주민투표율이 저조한 데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작용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세를 새롭게 추스르지 않으면 내년 총선 대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