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齊(제)나라 宣王(선왕)이 부르자 명을 어겨 조정에 가지 않았다. 이것은 얼핏 보면 신하로서 군주를 공경하는 태도를 어긴 듯하다. 하지만 맹자는 조정에서의 서열, 생활공동체상의 나이에 따른 순서, 世敎(세교)상의 가치 질서는 모두 존중받아야 하며, 조정의 서열이 나머지 두 가지를 압도할 수는 없다고 보았기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조선 세조 때 丘從直(구종직)은 맹자가 군주에 대한 공경의 태도를 잃었으므로 그를 결코 어질다 할 수 없다고 했다. 그 까닭은, 맹자가 ‘저자는 富(부)로써 하는데 나는 仁으로 하며, 저자는 爵으로써 하는데 나는 義로써 하니, 내가 어찌 저를 두려워하랴!’ 하고 또 ‘바라보아도 군주 같지 않고 가까이 나아가도 두려운 바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지난 호(1222)에서 보았듯이 맹자는 증자의 말을 인용하여 ‘晉(진)과 楚(초)의 부유함은 내가 따를 수 없거니와 저들이 富를 가지고 나를 대하면 나는 나의 仁을 가지고 대하며 저들이 관작을 가지고 나를 대하면 나는 나의 義를 가지고 대할 것이다’라고 했다. 또 ‘梁惠王(양혜왕)·상’에서 맹자는 梁襄王(양양왕)을 만나본 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길, ‘바라보아도 군주 같지 않고 그 앞으로 다가가도 두려워할 만한 바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구종직은 국왕의 권력이 강해야 국가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보았으므로, 기회를 보아 그렇게 말한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