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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15% 친노(親盧)의 말 갈아타기

입력 | 2011-08-14 20:00:00


황호택 논설실장

각종 여론조사에서 친노(親盧) 성향 표는 15% 정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할 정치인을 차기 대선의 야권 단일후보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문재인 유시민 씨를 저울질하며 옮겨 다니고 있다. 4·27 경남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국민참여당 후보가 한나라당에 패배하면서 유 씨의 하강이 시작됐고, 문 씨가 친노의 대안으로 급속하게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문 씨는 선거라는 검증절차를 거친 적이 없고 권력의지가 약해 보인다.

유 씨는 참여당과 민주노동당의 통합을 위해 사과(謝過)정치를 하고 있다. 그는 7월 5일 서울 용산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실을 방문해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그렇게 하자고는 못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에 반하는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활동한 김현종 씨를 집권 직후에 영입해 한미 FTA를 줄기차게 밀고 나갔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3월 농어민이 동참한 수요자 중심 업무보고에서 “한미 FTA 체결은 정치적으로 손해지만 앞으로 국가산업, 경제적인 문제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노 전 대통령의 복심(腹心)이었지만 노 정부 때 빛을 보지 못하고 감옥까지 갔다. 유 씨는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지지세력으로부터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비난을 들으며 체결한 한미 FTA를 유 씨가 반대하고 안 지사가 지지하는 것을 노 전 대통령이 살아서 목도했더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안 지사는 8월 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야권이 피해보상 및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다”라며 FTA 체결로 인한 충남도의 농업부문 피해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안희정의 유시민 작심 비판

안 지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직업정치인은 단위사업장(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문제를 뛰어넘어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제도적 장치나 입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희망버스를 비판했다. 유 씨는 정동영 천정배 의원과 함께 2, 3차 희망버스를 탔다. 유 씨의 희망버스 탑승은 민노당에 대한 구애(求愛)의 성격이 짙다. 안 지사는 참여당 민노당 합당 움직임에 대해서도 “민노당이 유시민을 필요로 하는 것은 결국 내년 대선 총선에서 민주당과 한판 하려는 것 아니냐”며 이것은 노선의 문제가 아니라 ‘게임의 문제’라고 말했다.

참여당은 민노당과 합당해 독일이나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같은 중도좌파 정당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 지사 같은 민주당 잔류파는 민주당에서 입지 구축이 어려운 유 씨가 ‘게임 이론’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 씨가 합당으로 몸집을 키워 정체성 논란에 시달리는 손학규 대표를 누르고 야권 단일후보를 노린다는 것이다.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내년 총선 대선에서 민주당과 연립정부 구성을 위한 정치협상을 벌여 지분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 씨는 민주당의 외곽을 때리는 전술로 경기도지사 후보와 김해을 국회의원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두 차례나 이겼지만 본선에서는 한나라당에 연거푸 패배했다. 민주당의 정통 지지세력 가운데 노장년층은 ‘유시민당’으로 단일화가 되면 표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참여당 측의 자체 분석이다. 참여당 관계자는 “경선 과정에서 상처가 남아 본선에 나쁜 영향을 주는 단일화보다는 정치협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531만 표 차로 대패한 데는 노무현 학습효과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노 전 대통령의 가벼운 언행과 편 가르기 정치가 5년 동안 많은 국민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실린 권위와 말의 파급력을 적절히 활용해 언론을 비롯한 각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가 과시하던 도덕적 우월성도 박연차 사건으로 손상을 입었다. 문재인 씨는 자서전 ‘운명’에서 가족이 박 씨로부터 돈 받은 것을 노 전 대통령이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대검 수사팀은 증거와 정황에 비추어 ‘몰랐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친노도 유통기한 있다”

안 지사가 “더는 정파로서의 친노를 하지 말라. 친노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말한 것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문 씨도 ‘운명’ 서문에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고 썼다. 친노 깃발만으로는 골수 지지계층을 빼놓고는 외연 확장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노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비판적으로 따지고,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야 친노에 고착된 15%를 넘어 지지층을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