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남의 노래 MC… 이번엔 나의 노래”
“고향 황해도서 노래자랑 열고 싶어” “고향땅인 황해도 재령에서, 정말 야단법석 놀아보고 싶어요.” 27년째 KBS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고 있는 송해 씨는 고향에서 꼭 한번 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고 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7년간 전국을 돌며 무대에 오르는 이가 있다. 검붉은 얼굴에 작은 키의 송해 씨(84). 매주 ‘전국노래자랑’에서 사람들이 노래 한 곡조 시원하게 뽑고 하고픈 이야기도 전달할 수 있도록 편안하게 진행한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쇼를 마련했다. 내달 12일과 13일 하루 두 차례씩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리는 ‘나팔꽃 인생 송해 빅쇼’.
“더 늦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들이 봤을 때 ‘아직도 쌩쌩하네’란 생각이 들 때 나가서 회포를 풀어야겠더라고요.” 이 공연에서는 송 씨가 비운 MC 자리를 후배 이상벽 씨가 맡기로 했다.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그는 해주음악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광복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되자 그는 1951년 1·4후퇴 때 홀로 피란 내려와 3년 8개월 동안 군 생활을 한 뒤 1955년 들어간 곳이 창공악극단이었다. 거기서 사회도 보고 노래도 부르며 경험을 쌓다 동아방송, MBC 등에서 방송활동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동아방송에선 1960년대 ‘스무고개’와 ‘나는 모범운전사’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스무고개’ 땐 고 박시명 씨랑 콤비를 이뤘어요. 라디오 프로그램이지만 방청객들이 있어서 분장을 다 했었지. 명사들이 나와서 스무고개를 푸는 거였는데 조금 막힌다 싶으면 둘이 들어가서 콩트를 하면서 힌트를 주는 게 우리 역할이었죠. 쉽게 알려주기도 했지만 일부러 맞히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지. 허허.”
① 1965년 코미디언 구봉서 씨(왼쪽)와 함께 콩트 쇼에 출연한 송해 씨.② 2003년 평양 모란봉공원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③ 2010년 ‘전국노래자랑’ 30주년 특집방송에서 후배 방송인으로부터 액자를 선물 받은 송해 씨. 동아일보DB·KBS 제공
공연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이번 공연에선 그가 직접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송해 씨는 2003,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앨범 ‘애창가요 모음집 송해쏭’을 낸 가수이기도 하다.
공연은 그의 인생 궤적을 그리되 전쟁을 겪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악극으로 꾸밀 생각이다. 그와 출연진은 ‘굳세어라 금순아’ ‘경상도 아가씨’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을 선보인다. 송 씨는 인터뷰 도중 눈을 감고 ‘홍도야 우지마라’에서 부르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부르기도 했다. “짓궂은 비바람에 고달파 운다/사랑에 속았다오 돈에 울었소…”
“후배 코미디언 중 엄용수 이용식 김학래도 코너를 꾸밀 예정입니다. 열심히 콘티를 짜는 것 같은데, 나도 끼워 주려나”라며 입맛을 쩝쩝 다시던 그는 “기성 대중예술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자신의 별명을 소개했다. 나팔꽃 인생. 같은 제목의 노래도 불렀던 그다. “아침에 활짝 폈다가 오후에 시들시들해지고, 그러다가도 그 다음 날 또다시 확 피고…그러길 반복하며 오래가는 꽃이 나팔꽃이죠. 제 인생이 그와 같죠.”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