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조광래 감독의 ‘만화축구(박진감 넘치는 축구)’가 제대로 된 만화축구에 당했다. 조직적 압박에 있어서나 압박을 벗어나는 세밀한 플레이에 있어서나 우리 축구대표팀은 일본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만화축구를 위한 기본에서부터 차이가 났다.
10일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돔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우리 선수들의 몸놀림은 대체로 무거워 보였다. 움직임이 무디다 보니 조직적인 압박과 압박에서 벗어나는 세밀한 플레이가 잘 이루어질 리가 없다. 선수 선발 및 기용 또한 이러한 문제를 부채질한 면이 있다. 실전 감각이 부족한 선수, 경기 후 장거리 여행으로 피로한 선수, 소속 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지 못한 선수들로 라인업이 구성됐다. 어떤 선수들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포지션에서 뛰었다. 박주영과 구자철, 이근호 등 이름값에 의존한 선수 선발과 기용, 기본에서 벗어난 지나치게 새로운 시도였다는 비판들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혼다 게이스케와 가가와 신지 등 일본 선수들의 패스와 움직임이 수준급이었던 탓도 있지만, 전방과 미드필드 라인에서부터 조직적 압박을 가하지 못하다 보니 우리의 위험지역으로 일본이 무사통과하는 상황들이 자주 연출됐다. 전략적으로 수비 라인을 뒤로 물리더라도 적어도 우리의 수비형 미드필드 지역에서는 일본의 공격을 좀 더 지연시키는 플레이가 필요했다. 간격과 질서를 고려하면서 여러 명이 동시에 공간을 통제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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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감독은 ‘과정이 제대로 안된’ 선수들로 스페인식 ‘패싱플레이’를 하려다 크게 당했다. 한국 선수들의 기본기가 일본 선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선수들의 수준을 직시하고 상황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플랜 A, B, C를 준비해 나서야 9월 시작되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에서 ‘삿포로의 굴욕’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