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명의 한국 남자, 미국 현대무용 聖地를 달구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서쪽 완만한 언덕 버크셔힐스 정상에 자리 잡은 ‘제이컵스 필로’는 매년 열리는 세계적 무용 페스티벌로 유명한 곳이다. 올해로 79회를 맞은 이 무용제로선 올해 축제가 더욱 뜻깊었다. 올해 3월 미국 무용단체로는 최초로 국가예술상(National Medal of Arts)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 무용제는 미국 현대 무용의 아버지로 불리는 테드숀(1891∼1972)의 손에 길러진 축제다.
그는 부인과 함께 ‘데니숀 컴퍼니’라는 무용단을 이끌며 마사 그레이엄, 도리스 험프리 같은 무용가를 배출하다 이혼한 뒤 제이컵스 필로에 정착하면서 이곳을 미국 무용의 성지로 바꿔 놨다.
앨빈 에일리, 호세 리몬, 폴 테일러, 머스 커닝햄, 마고 폰테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호페시 셱터 등 세계적인 무용가가 이 무용제를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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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한예종 무용원 졸업생들로 창단된 LDP무용단은 2009년 12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미국공연기획자협회(APAP) 공연예술마켓에 참가했고 이때 제이컵스 필로의 예술감독 엘라 바프의 눈에 띄었다.
한국 LDP무용단의 공연 중 ‘반갑습니까?’의 한 장면. 이 무용단은 미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제이컵스 필로 댄스 페스티벌’ 본무대에 한국 무용단으론 최초로 초청됐다. LDP무용단 제공
테드숀 시어터는 1942년에 지은 미국 최초의 무용 전용 공연장이다. 분장실 벽엔 이곳을 거친 무용수와 무용단체들이 남긴 낙서와 사인 등 흔적으로 가득했다. 무대 뒷벽은 거대한 문이기도 해 이 문을 열면 무대 뒤로 울창한 산이 펼쳐진다.
공연 첫날인 지난달 27일 무용단은 리허설을 두 번이나 하며 공연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세계적인 무용제의 본무대에 선다는 부담이 컸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열리는 무용제에서 600여 석의 객석을 채울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사람들이 어디서 몰려왔는지 객석이 빈틈없이 들어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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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LDP무용단이 무대에 섰던 ‘제이 컵스 필로’의 메인극장 테드숀 시어터. 1942년에 지어진 미국 최초의 무용 전용 공연장이다. 농장가옥과 비슷한 외관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 건축디자이너 조지프 프란츠의 의도였다. LDP무용단 제공
무술과 힙합 동작과 움직임을 접목한 듀엣 공연 ‘모던 필링’에 이어 이라크전쟁을 모티프로 역동적인 춤을 펼친 ‘노코멘트’ 공연이 이어지면서 객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연 막판 무용수들이 객석으로 뛰어들어 가 가슴을 손으로 때리며 통곡하는 동작을 할 때 관객들은 함께 발로 바닥을 구르며 무용단과 하나가 됐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기립박수가 끝없이 이어졌다. 공연 때마다 같은 분위기였다.
이번 공연 기간에 뉴욕한국문화원의 추진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전통 국악단체의 야외 공연이 함께 열려 일주일 동안은 ‘코리안 위크’가 따로 없었다. 이곳에서 공연을 펼친 LDP무용단의 무용수는 모두 8명의 남자였다. 공교롭게도 테드숀이 이곳에서 페스티벌을 시작할 때 함께한 무용수도 8명의 남자무용수였다. 하늘에 있는 테드숀이 이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했다.
전미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