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마’로 불렸던 투수 이상훈(전 LG)이 한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마운드에 오른 적이 있다. 야수들 역시 힘차게 뛰어 자기 수비 위치로 간다. 그런데 포수의 전력질주라니. 이유는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1군 포수는 “한 번은 밟아봐야 여한 없이 야구를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던” 자리였다. 10년 만에 꿈을 이룬 주인공은 SK의 ‘1군 포수’ 허웅(28)이다.
○ 10년 기다려 핀 꽃
그런데 막상 현대에 입단하니 당시 현대 소속이던 박경완은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박경완이 SK로 팀을 옮기자 김동수(넥센 코치)라는 또 다른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2군에서만 몇 년을 보내다 상무에 지원을 했으나 이번엔 정상호와 박노민에게 밀려 탈락했다. 어쩔 수 없이 2006년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고 서러운 이등병 시절 팀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래도 그는 운동을 떠나지 못했다. 방망이를 구해 틈날 때마다 거울을 보며 스윙을 했고 동료들과 캐치볼도 했다. “1군 무대에서 한 번이라도 공을 받고 싶다”는 꿈을 버릴 수 없었다. 2008년 제대 후에는 고향인 부산 인근 경남 김해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에도 진출했다.
부산고 시절 추신수(클리블랜드)와 배터리를 이룬 유망주 허웅(SK). 그러나 프로의 벽은 높기만 했다. 1군 무대를 밟는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SK 제공
○ 긍정의 힘을 믿었다
허웅은 “10년을 기다리면서 힘들 때가 참 많았는데 그럴 때일수록 일부러 더 밝게 말하고 행동하려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성격이 그렇게 되더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지금의 이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다. 항상 열심히 뛰고, 파이팅 외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1군에서 뛰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는 허웅이 내뿜는 행복 바이러스가 SK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