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하용조 목사를 그리며… 카피라이터 이만재 씨 특별기고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하용조 목사님을 처음 본 날이니 설교를 들은 것도 그날이 처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날이 내게는 개인적으로 천지개벽이 일어난 날이었다. 몹쓸 교만으로 똘똘 뭉쳐진 자칭 아무개가 한순간에 알몸이 되면서 엉뚱하게도 ‘예수쟁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날부터의 개인적이고도 유치한 초보 신앙기록이 윤형주의 강권과 하 목사님의 지시 아래 조그만 책자로 묶였는데 그 책 이름이 ‘막 쪄낸 찐빵’이다.
윤 장로가 어떻게 기름을 발라 부풀렸는지 하 목사님은 나를 그럴싸한 ‘물건’으로 여기신 듯하다. 그 바쁜 가운데도 내 작업실이 있는 충무로까지 직접 나오시는가 하면, 교회 당회장실로 나를 자주 불러 두란노서원의 운영에 대해 생각을 묻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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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재 카피라이터
가슴에 대고 훅 바람을 분다면 그 입 바람이 아무런 굴절 없이 그대로 가슴을 통과할 것처럼 맑은 분이 하용조 목사님이다.
하 목사님을 곁에서 관찰하는 동안, 인간적으로 경탄을 금치 못한 일이 있다. 일을 감당하는 초인적인 능력이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기본적인 설교 준비 외에도 원고 집필, ‘러브 소나타’ 등 해외선교 지휘 출장, 복잡다단한 회의 주관, 쉴 새 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국내외 방문객 접견, 경배와 찬양 등 크고 작은 행사 준비, 총장과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각종 교육기관의 업무처리 등으로 밤늦게까지 눈코 뜰 새가 없으셨다. 거기에 월간지 ‘빛과 소금’ ‘목회와 신학’ ‘생명의 삶’과 단행본 출판이 포함된 두란노서원 원장으로서의 사역 업무와 선교방송 업무가 에누리 없이 더해졌다.
1998년이던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교회 초청을 받고 목사님과 함께 참석한 일이 있다. 겹친 피로와 여독, 긴 투병생활로 육신은 그야말로 가누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는데도 강단에 올라서기만 하면 목사님은 금세 열정의 불을 뿜는 33세의 기운찬 영혼 ‘청년 예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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