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중편 2편, 장편으로 改作한 조정래 씨
소설가 조정래 씨는 사진을 찍다 말고 “최인호 씨는 요즘 건강이 어떤가” 하고 걱정스레 물었다. ‘사인회도 하시고 많이 좋아지셨다’고 기자가 답하자 조 씨는 “그 사람이 담배를 많이 피워 걱정이었다. 건강이 좋아져 글을 더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씨는 16년 전 ‘아리랑’ 탈고 후 담배를 끊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혈기왕성했던 30대 초반에 쓴 작품들을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새로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폭우가 쏟아지다 그치기를 반복하던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강남의 호텔에서 작가를 만났다.
“당시 ‘현대문학’ 등 문예지에 중편들을 발표했는데 제가 30대 작가여서 지면을 많이 허락해주지 않았어요. 부득이하게 중편으로 쓸 수밖에 없었지요. ‘이건 장편거리인데’ 하면서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지금 와서라도 장편으로 내니 한(恨)을 푼 것 같아요. 예전의 중편에 실린 내용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황토’는 일제강점기 말부터 광복, 그리고 6·25전쟁 등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아비가 다른 세 자식을 키운 한 여인의 지난한 삶을 그린 작품. ‘비탈진 음지’는 1970년대 무작정 상경해 칼갈이를 하며 두 자녀를 키우는 한 아비의 고된 일상을 그렸다. 독자들의 관심도 높다. ‘황토’는 2만5000여 부가 나갔고, ‘비탈진 음지’는 초판 1만 부를 찍었다.
“‘황토’에서 다룬 현대사의 비극은 우리 민족의 아픈 부분이고 끝없이 반추해야 할 부분이죠. ‘비탈진 음지’에서 다룬 ‘무작정 상경 1세대’들은 현재 폐휴지를 줍는 도시 빈민들이 됐어요. 옛날 얘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을 담고 싶었습니다.”
집필할 때 컴퓨터를 쓰지 않는 그는 중편 책 여백에 깨알같이 메모를 했다. 추가할 분량이 많을 때는 별도로 원고지에 담기도 했다. 그는 이 작업을 하며 “자신을 재발견했다”고 말했다.
“작업을 하면서 내가 안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지요. 젊었을 때처럼 뭐랄까, 머릿속에서 불이 반짝반짝하고 물이 샘솟는 것 같았어요. 또 당시 서른 정도 나이에 민족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게 기특했고, 그 정신을 40년 가까이 지탱해온 내 의지력이 대단하구나 생각했습니다.”
“밥 때를 놓쳤다”며 삼계탕 두 그릇을 주문한 뒤 꼼꼼히 살을 발라 먹으며 그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어갔다. 오전 7시, 낮 12시 반, 오후 6시 반 세끼 밥 때를 지키고, 하루 한 번 국민체조를 ‘정확히’ 따라하는 게 건강 비결이라고 했다. ‘흔한 성인병 하나 없다’는 그는 요즘도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집필실인 ‘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고 한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대하소설을 집필한 그는 ‘대하소설이 사라진 국내 문학계’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저는 분단, 식민지, 전쟁 등 쓸 얘기가 많아서 대하소설을 썼는데 요즘 작가들은 역사체험이 점점 없어지고 서구화돼 사사로운 얘기나 쓰는 것 같아요. 소설은 결국 스토리텔링인데, 그 이야기성이 약해지면 독자들이 안 읽게 됩니다.”
지난해 대기업의 전방위 로비 등 부패한 재벌 실태를 고발한 ‘허수아비춤’을 펴냈던 작가는 영토 확장 의욕을 비롯한 중국 문제를 다룬 세 권 분량의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취재차 9월부터 두 달간 중국을 다녀온 뒤 내년 상반기 1권을 낼 계획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